[짬] ‘징용’ 학술대회 참석차 제주 찾은 사토 쇼닌 대표
일본 ‘해남도 근현대사연구회’ 사토 쇼닌 대표.
2007년 ‘해남도 근현대사연구회’ 결성
출판·번역 하면서 동아시아 문제 관심 “해남도로 끌려간 조선인 2천여 명
노역과 학살로 대부분 희생당해
한국정부, 유해 발굴에 관심을 ”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일본이 해남도에서 저지른 침략범죄 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출판과 번역 일을 해오다 동아시아 근현대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해남도에 조선인이 강제연행되고 조선인 위안부가 존재했음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이도 그였다. 해남도 자료를 토대로 조선인 위안부 여성이 70~80명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 홋카이도 오타루에 살고 있는 그가 처음 해남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8년이다. 그는 “일본의 침략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데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일본 미에현 기슈광산에 강제연행된 조선인이 1200여명 정도였다. 이 광산을 경영하던 이시하라산업이 해남도에도 광산을 경영했고, 조선인들을 강제노동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해 6월 해남도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관심은 해남도에 집중됐다. 그가 2007년 8월 조직한 해남도 근현대사연구회는 회원이 100명가량 된다. 오사카에 사무국을 두고 1년에 두 차례 정기모임을 하며, 봄과 가을에는 해남도 현지조사를 한다. 이달 초에도 해남도를 다녀왔다. 연구회는 조선촌의 조선인 학살과 조선인 위안부 여성의 강제동원과 관련해 한국은 물론 해남도에서 직접 목격한 현지인들로부터 증언을 듣기도 했다. “저는 일본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해남도에서의 일본의 국가범죄를 총체적으로 규명하는 동시에 아시아 민중의 항일투쟁 역사를 배우면서 국민국가 형성기 이래 진행된 일본 국가의 침략 책임을 묻고 싶습니다.” 사토 대표에 따르면, 일본 육·해군이 해남도를 침략한 것은 1939년 2월이다. 일본 기업은 일본 점령하에 있던 해남도에서 일본군과 함께 자원 약탈과 주민 학대를 자행하고, 조선과 대만, 중국 대륙 각지에서 연행한 사람들을 강제노동시키고 학살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일본 기업의 경제적 침략은 일본군의 군사적 침략과 결부돼 있다고 확신한다. 일제는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1943년 3월부터 조선 각지 형무소에서 수감 기간이 몇 년 남은 수형자들을 선발해 ‘남방 파견 조선보국대’라는 이름의 단체를 조직해 해남도에 보내기 시작했다. 가출옥 상태로 나왔다가 거리를 지나거나 주소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이 붙잡혀 가기도 했다. 이들은 해남도에서 광석 채굴, 비행장 건설, 도로와 교량 건설 등에 종사하다가 대부분 희생됐다. 해남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일본 해군·군속과 일반인 등 2천여명으로 추정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조선보국대 대원들은 해남도 남쪽 싼야시 교외의 난딩촌에 집결해 군용도로, 동굴(갱도 진지) 건설 등에 동원된 뒤 1945년 8월 패전 직전 학살됐다. 일본군이 떠난 뒤 난딩촌은 조선인들을 애도하기 위해 ‘조선촌’으로 마을 이름을 바꿨다. ‘기슈광산의 진실을 밝히는 모임’에서 활동하던 그는 2004년 9월 ‘남방 파견 조선보국대’의 진상규명 자료를 일본 정부에 요청했으나 ‘자료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2006년에는 공적 기관에 의한 전면 발굴을 촉구하기 위해 조선촌의 조선인 유해를 시험 발굴했다가 중단됐다. 일본의 침략범죄를 밝히기 위해 조선촌의 유해 발굴은 꼭 이뤄져야 하고, 명단도 밝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 기업과 군인들이 해남도에서 많은 범죄를 저질렀어요. 조선촌에서 있었던 일은 일부분에 불과해요. 해남도 전체에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규명하고 싶어요. 특히 조선촌 학살 매장지는 일본군 범죄 현장 중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곳이라 매우 중요합니다.” 1939년 2월에서 1945년 8월까지 해남도에서 일본군과 일본 기업이 살해한 아시아 민중은 일본군 문서와 기업 문서만 따르더라도 7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그는 밝혔다. 사토 대표는 인터뷰를 마친 뒤 바로 미국 학자 존 메릴이 쓰고, 문경수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일본어로 번역한 책 <제주 4·3 봉기>를 들고,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았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hojoon@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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