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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나주 ‘남평 문씨’ 탄생지 가보고 ‘고려인 뿌리’ 확인했죠”

등록 2017-06-01 21:22수정 2017-06-02 06:29

【짬】 ‘강제이주 80돌’ 고국 전시하는 빅토르 문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3세 화가 빅토르 문이 1일 전시장에서 자신의 대표작 ‘1937년 강제이주열차’를 설명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3세 화가 빅토르 문이 1일 전시장에서 자신의 대표작 ‘1937년 강제이주열차’를 설명하고 있다.

“강제이주의 비극을 생각하고 체화해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광주시 동구 운림동 우제길미술관에서 1~9일 전시회를 여는 카자흐스탄 국적의 ‘고려인’ 3세 화가 빅토르 문(67·사진)은 대표작 <1937년 강제이주열차>(2001)를 보며 말문을 열었다. ‘카레이스키’로 불리는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50만여명의 한민족이다. 1864년부터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한인들은 황무지를 개간해 부촌을 이뤘지만, 80년 전 스탈린 정권 때 강제로 이주당했다. 그때 17만2천여명의 고려인이 한달 넘도록 시베리아 횡단 화물열차에 실려 불모의 땅으로 쫓겨가다 2만여명이 숨졌다. “어머니도 강제이주라는 말은 하신 적이 없었어요. 무서운 시대였지요. 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강제이주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어요.”

카자흐스탄 대표화가 꼽히는 고려인 3세
광주 우제길미술관에서 대표작 15점 소개
“할아버지 뗘났던 곳 돌아오니 ‘운명’ 실감”

1986년부터 교류하며 한국말도 독학
“고려인들 우리말 잊지 않게 지원 필요”
올가을 ‘초상화’ 시리즈 대규모 전시 예정

빅토르 문의 대표작 ‘1937년 강제이주열차’.
빅토르 문의 대표작 ‘1937년 강제이주열차’.
‘강제이주 80돌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귀한’ 주제의 이번 전시에서 그는 대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큐비즘 기법의 대표작 15점을 선보인다. ‘1937년 강제이주열차’ 작품에도 기차의 지붕 밖 연통이 마치 한민족이 쓰던 갓 모양을 닮아 있다. 상투를 튼 한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삼각형 붉은 깃발엔 훨씬 더 좋은 땅에서 농사짓게 해주겠다는 당의 약속을 믿었던 한인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 속의 새는 목 부분이 잘려 있다. 그는 “이것은 소련 정부의 거짓 선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하는 새의 모습은 고려인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그는 10살 무렵 집의 흙벽돌에 부엌칼로 사람의 형상을 새길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이웃집 할머니가 빗물이 스며든 그의 조각 작품이 기괴한 형상으로 변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치기도 했다. 소학교반 교사이던 어머니 박시나이다는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사람들 놀라게 하지 말고, 그림을 그려라”며 종이를 건넸다. 그 소년은 지금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명이 됐다. 현재 그의 그림 <고갯길>은 카자흐스탄 대통령 집무실에 걸려 있다. 카자흐스탄 국립미술관에도 그의 작품 4점이 소장돼 있다. 올 1월 카스테예프미술관에서 고려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전시회도 열었다.

그의 작품엔 비극적인 역사성이 깔려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밝고 희망적이다. <미지의 세계>, <붉은 안개> 등의 작품엔 “고려인의 정신과 기억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강제이주의 슬픈 역사와 상처를 담으면서도 작품 속에 “풍자나 해학이나 유머를 함께 집어넣었다”고 한다. “아픔이나 상처를 좀 더 관조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예술가들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2004년 심장병을 얻은 이후 그린 작품엔 자주 촛불이 나온다. “촛불은 사람의 의식이나 사고를 상징합니다. 강제이주 등 어려움 속에서도 의식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몰라 답답했다. 그러다 2013년 전남 나주 남평읍에 있는 ‘남평 문씨’ 집안의 탄생설화가 깃들어 있는 ‘문바위’를 보고 “비로소 내 뿌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할아버지 세대가 한반도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갔어요. 그런데 내가 다시 광주로 회귀하는 것이 꼭 운명인 것 같아요.”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그는 25년 동안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어 교실을 연 김병학 목사(시인)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86년부터 한국을 오가기 시작하면서 한국어를 모르면 불편함을 느껴 단어를 종이에 써 외우는 방식으로 독학했어요.” 그는 “한국 정부가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단절된 세월을 잇는 가장 중요한 고리”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마침 강제이주 80돌이다. 올가을 그는 광주에서 또 한번 전시를 열어 고려인의 역사와 긍지가 담긴 작품 8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고골 알마티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1977~97년 국립고려극장 주임미술가로 근무했던 그는 고려인의 정체성을 지켜온 문화공간인 고려극장의 극작가 고 한진(한대용) 등 20명의 고려인 지도자의 초상화를 그려왔다. 그는 “20명 가운데 한명만 남았다. 아마 가을 전시에서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초상화들은 매우 특별한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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