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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전성시대의 그늘…열정페이에 우는 ‘유령작가’들

등록 2017-06-12 18:42수정 2017-06-12 20:41

채색·배경 돕는 보조작가들
아이디어 내고 기획도 하지만…
월평균 수입 105만원 불과
여성은 ‘단지 여자라서’ 69만원

메인작가들 욕설·폭력·성추행에
청소·빨래 등 집안일까지 시켜
일러스트레이트 작가는 더 열악
서울시 “불공정행위 조사 의뢰”
만화·웹툰 글 작가 지망생 ㄱ씨는 2013년 강사로 활동하는 한 작가의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안을 작성하는 보조작가들의 일 이외에도 ‘선생님’이 광고에 출연하면 대신 원고를 써주기도 했다. ㄱ씨가 3년 동안 일하면서 받은 돈은 처음 두 달 프로젝트 비용으로 받은 100만원이 전부였다. ㄱ씨는 칵테일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애니메이션·게임 회사 구성작가를 하며 한달 평균 60만원 정도를 벌어 생계를 유지했다. ㄱ씨가 대사를 쓰고 장면을 구성한 대로 그 작가 이름의 웹툰이 만들어졌지만 ㄱ씨는 늘 ‘유령작가’였다. 심지어 ㄱ씨는 성추행도 여러 번 당했다고 주장한다. 선생님은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보자”며 그를 마음대로 만지거나 강제로 키스를 한 뒤에 “안 했다. 누가 본 사람 있냐”며 발뺌하기도 했다. ㄱ씨는 얼마 전 그를 강제추행,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형법의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해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다.

‘만화작가 수입 실태조사’ 결과. 서울시 제공
‘만화작가 수입 실태조사’ 결과. 서울시 제공
‘일러스트 작가 수입 실태조사’ 결과. 서울시 제공
‘일러스트 작가 수입 실태조사’ 결과. 서울시 제공
2016년 기준 국내 웹툰시장은 5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해 원고료 1억원을 넘는 스타작가도 여럿 나왔다. 하지만 만화 작가 대부분은 여전히 가난하고, 특히 여성 보조작가는 그중 가장 어려운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12일 발표한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만화·웹툰 작가는 월평균 198만원을 벌고, 채색·배경 도움 등의 보조작가는 105만원을 버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별 소득격차도 컸다. 만화가 중에선 남성작가가 월 233만원으로 여성작가보다 평균 52만원 많았다. 여성 보조작가의 월평균 수입은 69만원에 그쳤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웹툰 작가 315명, 일러스트 작가 519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만화단체 관계자는 “남녀 작가의 보수 차이는 출판만화 시절부터 이어진 만화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웹툰 시대로 옮겨오면서도 여성작가들이 적극적으로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대본소와 신문만화가 중심인 출판만화 시절엔 아무리 유명 여성작가라고 하더라도 남성작가에 비해 70~80% 정도의 고료밖에 받지 못했는데 그 관행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국만화가협회가 펴낸 <불공정 노동행위 및 성폭력 사례집>을 보면, 보조작가들이 유명 작가 작업실에 만화를 배우러 들어갔다가 보수를 받기는커녕 보조작가에게 지급되는 국가보조금까지 떼이면서 무보수로 유명 작가들의 청소·빨래 같은 집안일까지 해준 사례가 여럿 나온다. 이 중엔 욕설과 반말은 기본이고 폭력·성폭력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과거 신뢰와 책임으로 맺어진 화실 도제관계가 여전히 근로계약서도 없이 유지되면서 노동착취로 변질된 경우다. 서울시 조사에서도 만화·웹툰 작가 30.8%가 인권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그중 47.1%는 선배 작가, 39.7%는 웹툰을 전송하는 온라인 플랫폼에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만화·웹툰 작가의 9.5%, 일러스트 작가의 10.6%가 성폭력(성추행·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도 답했다.

아직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 일러스트 작가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하다. 서울시 조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는 평균 144만원을 버는데, 남성(212만원)과 여성(127만원) 사이 소득격차는 85만원에 이르렀다. 일러스트 작가 중에서 인권침해 경험자(36.0%)의 65.1%가 거래처에 당했다고 답해 업무상 갑을관계가 인권침해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러스트를 그리는 ㄴ작가는 한 대형 출판사 학습지 표지를 그리면서 100번을 넘게 고쳐야 했다. 표지 한 권당 책정된 금액은 10만원이었다. ㄴ작가는 “거의 모든 학습지 출판사가 마찬가지다. (이미지에서) 윙크를 하게 해달라, 눈을 뜨게 해달라, 왼쪽을 보게 해달라고 수없이 고치게 하다가 결국 ‘처음 그대로가 좋다’는 식이지만 단 한번도 수정안에 대한 대가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조사 결과, 교육 관련 출판사에서 소액 계약금을 받고 모든 권리를 양도하는 매절계약, 수정안·시안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관행, 업무영역·마감시한·지급방법 등 한도가 명시되지 않은 불공정 계약이 보편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 서울시 제공
‘문화예술 불공정 실태조사’ 결과. 서울시 제공
만화·웹툰 작가의 36.5%는 불공정 계약조건을 강요당한 일이 있으며 33%는 플랫폼이나 작가 에이전시의 부당한 수익배분으로 평균 766만원을 손해 봤다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러스트 작가의 79%가 불공정 계약을 강요당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과도한 수정 요구(23.6%), 시안비 미지급(29.2%), 매절계약 강요(15.2%) 등이다. 웹툰 분야에선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웹툰 연재 표준계약서’를 마련했으나 실제 사용률은 23.9%에 그쳤다. 일러스트는 아예 표준계약서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천명철 서울시 공정경제과장은 “낮은 권리의식과 열악한 산업구조로 그림산업에서 불공정 거래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조사 결과 나타난 불공정 행위 중 특히 법 위반이 의심되는 사례에 대하여 문화체육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조사를 의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남은주 구둘래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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