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총 인질극’을 벌였던 김아무개씨가 5일 오후 경남 합천경찰서로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아빠, 나는 죽기 싫어요.”
김아무개(41)씨의 “같이 하늘나라로 가자”는 말에 아홉살 아들이 이렇게 답했다. 아들과 함께 죽으려던 김씨의 마음이 흔들렸다. 지난 4일 오후 5시께부터 경남 합천군에서 아들을 인질 삼아 엽총을 들고 경찰과 대치한 김씨는 이날 밤 10시30분께 아들을 풀어줬고, 자신도 경찰의 끈질긴 설득에 다음날 오후 4시께 엽총을 버리고 투항했다.
경찰은 인질로 잡힌 아들을 무사히 구조하고 김씨의 자살도 막기 위해 4일 오후 5시께부터 2시간에 걸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 끝에 김씨 차량을 황매산터널 쪽으로 몰아넣어 고립시킨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차량 4대가 파손됐다. 김씨는 엽총 9발을 쏘며 거세게 저항했고, 달아나기 위해 경찰순찰차와 119구급차, 트럭 등 차량 3대를 빼앗기도 했다. 경남경찰청은 6일 ‘엽총 인질극’의 숨가빴던 상황을 공개했다.
사건 당시 김씨가 아들을 태우고 가던 트럭을 경찰이 처음 막은 것은 4일 오후 5시께 경남 합천군 합천호 부근 임도였다. “아들과 함께 죽겠다”는 문자를 남겼다는 김씨 전 부인(39)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김씨를 찾아냈다. 김씨는 30m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엽총 산탄 1발을 쏘며 저항했다. 경찰순찰차 조수석 앞부분이 부서졌다. 김씨는 아들 머리에 총구를 겨눈 상태에서 경찰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차량열쇠를 뽑은 뒤 차에서 나왔다.
김씨는 자신의 트럭을 몰고 도망갔다. 합천경찰서 소속 경찰이 카니발 승용차를 몰고 쫓아가자, 김씨는 총을 쏘아 승용차 타이어를 터뜨려 추격을 막은 뒤 다시 달아났다. 곧바로 뒤쫓던 경찰순찰차가 방송으로 “협상을 하자”고 요구하자 김씨는 30m 거리에서 공중을 향해 총을 쏘며 경찰의 접근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순찰차로 김씨의 트럭 앞뒤를 막은 뒤, 영화에서 보듯 김씨 트럭을 들이받으며 세우려고 시도했다.
김씨는 트럭에서 내려 아들 머리에 총구를 겨눈 상태로 걸어가, 대기하고 있던 119구급차로 다가갔다. 그는 119구급차 뒤쪽에 총 2발을 쏘아 뒤범퍼를 부수고, 총개머리판으로 창문을 깬 뒤, 차에 타고 있던 구급대원 2명에게 나오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119구급차를 빼앗아 몰고 가다 앞을 가로막는 경찰순찰차를 향해 총을 1발 쏜 뒤 경찰에게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다시 경찰순찰차를 빼앗아 몰고 가던 김씨는 지나가던 트럭 앞을 가로막아 세운 뒤, 트럭을 빼앗아 타고 다시 달아났다.
도로에서 인명피해 없이 김씨의 달리는 차량을 붙잡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 경찰은 근처 황매산터널로 김씨 차량을 유도해 고립시키기로 결정했다. 경남 합천경찰서 등 김씨 차량을 쫓던 경찰은 샛길로 빠지지 못하도록 하면서 김씨 차량을 황매산터널로 유도했다. 터널 반대쪽 경남 산청경찰서는 터널 출구 쪽을 틀어막았다.
터널 입구에 다다른 김씨는 그제야 출구가 막힌 것을 알았다. 김씨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후진하며 또다시 엽총 1발을 쏘았다. 이때 처음으로 경찰이 실탄 1발을 쏘며 대응했다. 결국 김씨는 터널 입구에 차량을 멈춰 세우고 경찰과 대치했다. 4일 저녁 7시10분께였다. 이때부터 경찰 협상전문가의 피말리는 설득전이 시작됐다. 김씨는 아들에게 총구를 겨눈 상태로 “이혼한 전처를 데려오지 않으면 아들과 함께 자살하겠다”고 협박했다. 경찰은 김씨에게 담배·물·우유·빵을 제공했는데, 김씨는 아들에게만 음식을 먹이고, 자신은 담배만 피웠다.
4일 밤 10시께 김씨의 전처가 현장에 도착했다. 김씨는 “전처를 데리고 오면, 아들을 풀어주겠다”고 했고, 경찰은 “아들을 풀어주면, 전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아들은 김씨에게 “나는 죽기 싫어요”라고 했다. 밤 10시30분께 김씨는 아들을 풀어줬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에게 전처를 데려다주지 않았다. 전처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금이라도 자수하면 정상참작을 해줄 수 있다”며 김씨를 설득했다. 결국 다음날 오후 4시께 김씨는 총을 트럭 안에 둔 채, 밖으로 나와 경찰에 투항했다. 김씨가 준비했던 총알은 모두 11발이었는데, 9발은 쏘고, 1발은 땅바닥에 흘렸으며, 남은 것은 엽총에 장전된 1발이 전부였다. 마지막에 자신이 자살할 때 쓰려던 것이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김씨를 긴급체포해, 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강도,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김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2013년 이혼한 뒤 경남 고성에서 아들을 키우며 살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양육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처와 지난 3일 문자를 주고받으며 다투다 다음날 아침 전화로 다시 말다툼을 한 뒤 전처에게 “아들과 함께 죽겠다”는 문자를 남기로 집을 나갔다. 김씨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 자신의 트럭에 아들을 태우고, 오전 10시23분께 경남 진주시 진주경찰서 진양호지구대로 갔다. 유해조수포획단 소속인 김씨는 지구대에 맡겨둔 자신의 엽총을 찾아 경남 합천군 쪽으로 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앞을 막자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일부 언론은 경찰이 순찰차를 빼앗겼다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으나, 김씨가 자기 아들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실제로 총을 쏘기도 했기 때문에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순찰차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엽총을 쏘며 인질극을 벌이는 사람을 상대로 단 한명의 인명피해 없이 상황을 마무리했다는 점을 평가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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