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부산 강서구 장대현학교에서 미국 원어민 영어교사 아마니(42)가 수업을 하고 있다. 장대현학교 제공
“종이에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 4개를 적으세요.”
지난 6일 오전 9시 부산 강서구 장대현학교 1교시 생활영어수업에서 원어민 영어교사 아마니 아렌스(42)가 “시에 담을 형용사들을 적어보자”고 하자 학생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종이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다.
아마니는 미국 정부의 대안학교 중고교생들을 가르치는 현직교사인데 지난달 13일 미네소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장대현학교에 왔다. 오는 23일까지 5주간 수업을 하고 1주간 장대현학교 학생들과 부산의 명소 등을 체험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아마니는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들이 직접 지은 시조를 영어로 표현시키려고 해요. 감정을 영어로 표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미국에 가면 학생들이 지은 시를 책자로 만들어 한국으로 보낼 계획이다”고 말했다.
장대현학교 학생들은 미국 원어민 영어교사를 만난 것을 신기해하고 있다. 박철민(17)군은 “아마니 선생님이 친절하고 웃으시면서 수업을 하지만 뭔가 카리스마도 있고 위엄도 있어요. 아이들이 긴장하며 진지하게 수업에 임해요”라고 귀띔했다.
지난 6일 부산 강서구 장대현학교에서 미국 원어민 영어교사 아마니(42)가 수업을 하고 있다. 장대현학교 제공
장대현학교는 2014년 3월 개교했다. 북한을 탈출해 남한의 중·고교에 편입했으나 언어와 문화의 이질감 등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남한의 중·고교에 다니기 힘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다.
전국 20여곳에 탈북 학생 대안학교가 있는데 장대현학교는 영·호남에서 유일하다. 현재 북한·중국·한국 국적의 학생 23명이 기숙하며 대학 진학의 꿈을 키우고 있다. 2013년 7월 학교를 운영하는 재단이 통일부 인가를 받았고 부산시교육청이 장대현학교를 중·고교 학력이 인정하는 대안위탁교육기관으로 지정했다.
장대현학교는 교사자격증을 지닌 정규직 교사 5명과 50여명의 전·현직 교사와 전문가 등이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국어·영어·수학 등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과목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교사 자격증을 지닌 원어민 영어교사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장대현학교의 바람은 3년 만에 이뤄졌다. 1946년 설립된 미국 정부의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에서 아마니를 파견해 준 것이다. 풀브라이트가 세계 각국에 파견할 교사를 모집했는데 아마니가 지원을 해 합격했다. 아마니는 “미국 대안학교의 타이계 학생들이 케이팝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한국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됐어요. 지원자가 많아서 안 될 줄 알았는데 합격 통보를 받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풀브라이트는 해마다 공모를 통해 세계 각국에 영어교사를 파견한다. 체류비와 교통비 등 모든 경비를 지원하다 보니 미국 초·중·고교 교사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풀브라이트가 영어교사를 모집하기 위해 누리집에 파견 나갈 후보지를 올렸는데 한국에선 장대현학교밖에 없었다고 한다. 임창호 장대현학교 교장(고신대 교수)은 “국내 유수한 일반고도 있는데 세계적인 장학재단에서 장대현학교만 한국의 후보지로 올렸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부산 강서구 장대현학교에서 미국 원어민 영어교사 아마니(42)와 탈북 학생 박철민(17)군이 쉬는 시간 대화를 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10일 또다른 소식이 날아왔다. 풀브라이트에서 9월부터 1년 동안 근무할 영어교사를 보내주겠다고 연락했다고 한다. 임 교장은 “오늘 전화로 연락을 받았다. 곧 팩시밀리로 공문을 보내겠다고 한다. 풀브라이트의 단기·장기 원어민 영어교사를 일반학교가 아닌 대안학교에서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마니에게 3주가량 장대현학교 학생들을 가르친 느낌을 물었다. 그는 “장대현학교가 이제 3년이 됐는데 프로그램이 체계적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가르치는 것이 놀랍다. 북한이 무서웠는데 장대현학교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통일에 대해 “장대현학교를 보면서 희망적이라고 느꼈다. 이곳은 통일을 연습하는 곳이다. 통일시대 리더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한국은 오랜 역사를 가지지만 분단 역사는 짧다. 통일이 늦어진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바라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