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동물원서 구조됐던 호랑이 사망
방치사실등 알려지며 ‘동물원법’ 계기
태어났던 서울대공원 돌아와 자연사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을 때 크레인의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지난 2012년 8년만에 자신이 태어난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온 호랑이 크레인이 25일 세상을 떠났다.
크레인은 2000년 10월 15일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태어날때부터 백내장에 기관지까지 좋지 않았던 아기 호랑이를 돌보던 사육사는 튼튼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중장비 기계 명칭을 따서 ‘크레인’이라고 불렀다. 이름 덕분인지 크레인은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기고 호랑이의 평균수명 15살을 넘겼다. 동물원 사무실에서 길러지던 그는 아기 땐 동물 스타였다. 동물 프로그램에선 곧잘 짧은 목줄을 매고 철창에 털을 부비는 크레인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겨울 동물원을 찾은 황윤 감독은 어미의 품을 그리워하지만 1m 길이도 되지 않는 짧은 목줄에 묶여, 작은 종이상자 안에서 잠자는 법을 배우는 새끼 호랑이에게서 동물원의 전시물로 살아가기 위해 야성을 박탈당하는 한 어린 동물을 보았다. 철창을 나가고 싶어 하루종일 울부짖던 크레인의 모습은 영화 <작별>로 만들어졌다.
크레인이 아기티를 벗자 근친교배로 태어나는 많은 동물이 그렇듯이 부정교합과 안면기형이 나타났다. 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을 서성거리던 호랑이는 2004년 원주 드림랜드 동물원으로 보내졌다. 그런데 드림랜드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동물들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됐다. 2012년 <한겨레>가 영양부족과 병에 시달리는 동물원 속 동물들 이야기를 보도하면서 크레인의 사연은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됐으니 8년 가까이 크레인은 배고픔과 고립을 견디면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크레인은 그해 12월 28일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돌아와 사육 및 건강관리를 받아왔다. 서울대공원은 “동물원으로 돌아온 뒤 얼마간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 곧 몸무게도 늘어나는 등 회복했다”며 “시베리아 호랑이의 평균수명이 약 15년임을 감안하면 건강하게 살다가 노령으로 자연사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크레인을 서울대공원으로 돌려보내자는 목소리는 그뒤 동물원법 제정을 위한 입법운동으로 모아져 지난해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되는 결실을 맺었다. 황윤 감독은 “평생 철창에 갇혀 살았던 크레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많은 화두를 남겼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