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엎치락뒤치락하던 행정소송은 끝났지만, 화려한 유럽풍 골목 안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사업무효 판결 이후 보름이 지난 26일 찾아간 전남 담양의 메타프로방스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6살짜리 아이의 손을 잡은 30대 부부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를 연상시키는 마을을 걸으며 연신 엄지를 치켜올렸다. 이 부부는 “경기도 안양에서 350㎞를 달려왔다. 풍경이 멋지고 음식도 맛있어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붉은 지붕을 배경으로 잇따라 사진을 찍었다. 슬리퍼를 신은 채 카페에 앉아 팥빙수를 먹거나 상점을 돌며 토산품을 고르는 연인과 친구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마을엔 관광객은 모르는 속사정이 있다. 골목 안에서 만난 식당 주인이나 카페 직원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식당 주인 박아무개씨는 “식당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물려 있는 임대료가 4억원이나 되는데…”라고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카페 직원 박아무개씨는 “일한 지 반년쯤 됐다. 또 옮겨야 하는 것인지 걱정스럽다”며 말끝을 흐렸다.
메타프로방스는 담양군이 2012~2017년 담양읍 학동리에 조성한 유원지의 일부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길로 선정된 길이 1.8㎞, 아름드리 메타세콰이어 500여그루를 볼거리로 삼아 조성했다. 담양군은 1단계인 전통놀이마당, 3단계인 농어촌주제공원을 맡아 마무리했다. 2단계인 메타프로방스는 민간자본을 유치해 상가·카페·펜션·호텔 등 수익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체류형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670억원을 들여 숲길 주변 13만5000㎡(4만평)에 유럽풍 건물 104동을 지을 계획이다. 현재 56동을 준공했고, 47동은 건축 중이다. 임시 개장 상태인데도 이미 한해 200만명이 몰린다.
이 사업은 시작부터 “사업자 선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잡음이 불거졌다. 담양군은 “아이디어로 성공한 투자유치”라고 자랑하나, 일부 주민은 “사업자만 배를 불렸다”고 비판한다. 사업 인가와 토지 수용을 둘러싼 공방은 끝내 법정으로 번졌다. 지루한 소송 과정에서 1심과 2심의 판단이 뒤집히는 혼란이 뒤따랐다.
결국 대법원은 지난 11일 강아무개씨 등 주민 2명이 담양군수를 상대로 낸 사업시행계획 인가 취소소송에서 2심과 같이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공익사업을 하겠다며 추진한 토지수용도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사업부지의 66.7%를 확보해야 하는데도 59%에 그친 업체를 (담양군이) 사업시행자로 지정한 것은 중대한 흠결이다. 이를 전제로 이뤄진 실시계획 인가와 토지수용 재결도 원인무효”라고 밝혔다.
판결 직후 담양군은 “시행자 지정의 흠결을 고쳐 내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재인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군은 “사업 자체가 아니라 시행자 지정이 잘못됐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라며 “8월 초 시행자를 재지정하고 10월 실시계획을 확정해 공사를 재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업체인 디자인프로방스에 재인가하겠다는 뜻이다. 군은 또 시행자가 이미 430억원을 들였다는 현실론도 들었다. 이해관계인들이 분양·등기에 127억원, 입주업체 49곳이 보증금·개축비로 141억원을 각각 지출했다는 상황도 제시했다.
소송을 낸 원토지소유자들은 자격 미달로 확인된 시행자를 재지정하겠다는 방침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법원의 판결 취지를 훼손하는 파렴치한 태도”라며 “사업무효라고 판결해도 재인가를 내준다면 법원 위에 행정이 있는 셈”이라고 발끈했다.
소송 대표 강승환씨는 “겉만 공익사업이고, 속은 특정업체에 수백억원을 챙겨준 군정농단”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시행자가 지정 6일 전에 만들어져 실적이라곤 전혀 없는 업체인데도 담양군이 토지를 사전 매입하고 사업자 지정을 앞당겨 대출편의를 제공한 데다 공익토지 매각과 시행법인 분할을 허용하는 등 온갖 특혜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4년 12월 실시계획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는데도 공사를 강행하고 등기를 이전했다. 이런 불법 행위로 공정이 당시 25%에서 현재 80%로 올라갔다. 법원을 무시하고 진행한 55%는 철거해야 마땅하다”고 못박았다.
메타프로방스는 다른 자치단체의 민자사업에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27일 열린 광주어등산개발사업 토론회에서 담양 메타프로방스 사례를 거론했다. 김동헌 광주경실련 사무처장은 “공익을 앞세워 특정업체한테 이익을 챙겨줬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이해관계인들의 컨소시엄 구성이나 이해관계인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의 심의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해관계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쟁점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 불똥이 어디로 튈지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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