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개관 예정인 합천원폭자료관에 1일 원폭피해자들이 미리 찾아와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교토에서 태어나서 히로시마로 이주해 살았습니다. 1944년 12월 히로시마로 징집당해 공장에 다니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피폭 당시 조선사람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번쩍하면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지가 컴컴해졌습니다. 당시 임신 6개월이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자식들의 결혼문제 등 차별이 두려워 원폭피해자인 걸 숨기고 살았습니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김아무개(89)씨).
“아버지는 일본 히로시마로 강제징용돼 가셨다가 피폭당하셨습니다. 해방이 되자 귀국했는데, 점점 거동을 못하시게 되고, 문밖 출입조차 할 수 없게 됐다가, 40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언니, 오빠와 막내인 저까지 아버지와 같은 증상으로 힘겨운 투병을 했습니다. 언니는 투병 끝에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고, 언니의 딸 역시 같은 증상으로 투병 중입니다. 오빠는 길고 고통스러운 투병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2세. 백아무개(51)씨).
국내 첫 원자폭탄 피해자 자료관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에 문을 연다.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지고 72년만이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는 1일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인근에 지은 합천원폭자료관의 개관식을 6일 오전 10시30분 한다”고 밝혔다. 자료관은 지상 2층 건물로, 경남도비 3억원, 합천군비 3억원과 복권기금 15억원 등 모두 21억원이 들어갔다. 1층엔 전시실과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사무실, 2층엔 자료실과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사무실이 배치됐다.
전시실은 원자폭탄의 배경·피해·이해 등 크게 세 분야로 나뉘어 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와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사망자는 히로시마 8만명, 나가사키 20만명 등 28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한국인 사망자는 히로시마 1만5000명, 나가사키 3만5000명 등 5만명으로 전체 희생자의 20%에 가깝다. 이들의 출신지는 경남 합천이 가장 많다. 합천 출신 강제징용자 대부분이 히로시마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린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는 당시 원자폭탄에 피폭됐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이들과 해방 이후 태어난 이들의 자녀 등 300여명으로부터 직접 겪은 피해 상황을 자필진술서로 받아 일부를 전시한다. 원폭피해자들은 모두 고령이라, 자료관 개관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이 겪은 고통을 유언처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이도 여럿이다.
심진태(75)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원폭피해자들이 모두 힘들게 살았던데다, 죽으면 유품을 태우는 우리 전통문화 때문에, 원폭 피해자 관련 자료가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피해자 모두가 고령이기 때문에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관련 자료를 서둘러 수집해야 하며, 현재 수집된 자료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산화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72주년 한국 원폭 피해자 위령제가 6일 오전 11시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뒷마당 위령각에 열린다. 위령제 직전 합천원폭자료관 개관식이 열린다. 합천/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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