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아파트 커뮤니티시설은 주변을 울타리로 둘러싸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남은주 기자
22일 서울시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 커뮤니티센터(공동시설)들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비즈니스룸, 도서관, 독서실, 카페 등은 입주민 카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고, 관리실에선 “입주민이 아니면 어떠한 시설도 이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수경작물 재배실이나 주민회의실이라는 이름을 내건 곳들은 비어 있었으며, 관리실에선 “현재로선 특별한 운영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설계 당시 동간 간격이나 발코니 설계 등에서 혜택을 받는 조건으로 개방된 공동시설을 마련하기로 했던 곳이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3년 주민공동시설 총량제가 도입되고 최근 헬스장, 사우나에 물놀이장까지 고급 주민공동시설들을 내세운 아파트들이 나오면서 아파트 커뮤니티센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공간만 과대 규모로 조성되거나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크로리버파크 근처에 있는 신반포 래미안팰리스 아파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 아파트는 학교와 접한 길가에 도서관과 회의실 등을 만들었지만 울타리를 둘러쳐 외부인이 절대 드나들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최근 서울시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공동주택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새로 짓는 아파트 커뮤니티시설은 인근 주민과 공유할 수 있도록 단지 가장자리에 배치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완공된 다음에 이를 개방해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강북의 아파트 커뮤니티시설은 또 다른 이유로 비어 있었다.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지은 구로구 천왕동 7단지와 강동구 강일11단지 아파트에 있는 경로당은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라곤 없었다. 이 아파트들은 일반 아파트와 달리 사회초년생, 대학생, 고령자, 신혼부부가 입주할 수 있는 행복주택이다. 그런데 일정 가구수를 넘으면 경로당, 놀이터, 어린이집, 작은 도서관 등을 필수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주민공동시설 기준에 맞춰 일률적으로 커뮤니티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6월 <서울도시연구>에 실린 ‘서울시 커뮤니티시설 공급 및 활용실태에 관한 연구’를 보면 서울주택도시공사가 2011~2015년 사이 준공한 50개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시설은 법에서 정한 기준 면적을 최대 3.5배까지 넘어서는 등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하지만 본래 용도로 운영되는 시설은 24.1%에 불과했고, 135개 커뮤니티 시설 중 19곳은 아예 공실로 방치돼 있었다. 특히 회의실이나 사랑방 등의 공실 비율이 특히 높았다.
반면,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소모임 공간이나 프로그램 강의실로 활용하는 100~150가구 정도 되는 단지에선 공동시설 이용률과 만족도가 크게 높았다. 150세대가 넘는 단지부턴 커뮤니티시설보다는 게스트하우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논문을 작성한 서울주택도시공사 김진성 연구원은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운동시설과 회의실 모두 프로그램과 사람에 투자해야 제대로 활용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입주민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과 외부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이 활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공동주택의 공공개방 커뮤니티를 건립 목적에 맞게 활용하기 위해선 개방형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정형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최근 신반포3차·경남재건축조합 등이 공공개방 커뮤니티시설을 추가하라는 서울시의 요구를 수용하며 재건축 심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개방된 공공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재건축되는 3~4년뒤엔 6000㎡에 이르는 반포의 커뮤니티시설들이 빈 시설이나 닫힌 시설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커뮤니티시설의 면적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민간이 소유하고 공공이 관리하는 공공기여시설로 성격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서초구는 “아크로리버파크는 법적 근거가 없어 개방하도록 강제하기가 어렵지만, 최근 개방 권고 공문을 보냈으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논의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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