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9월8일 제주올레 1코스 개장식에서 참가자들이 올레길을 걷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제주올레 17코스(광령~산지천)의 한적한 길을 박성민(24·경남)씨가 배낭을 메고 혼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문턱을 두드리는 기온이지만, 낮은 여전히 뜨거워 박씨는 햇빛가리개를 하고 있었다.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며 겪은 체험을 담은 파울루 코엘류의 <순례자>를 읽고 나서 제주올레를 찾았다고 했다. 지난달 20일부터 매일 올레 한 코스를 걷고 있는 박씨는 “걸으면서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나 스스로 ‘이 길을 왜 걷나’라고 계속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결론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인 것 같다”며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박씨는 25일 동안 올레를 걸을 예정이다.
8일로 제주올레가 개설된 지 10년을 맞는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2007년 9월8일부터 5년 동안 21개 정규코스와 우도·가파도·추자도 등 제주 주변 섬과 중산간을 지나는 알파코스 5개 등 모두 26개 코스 425㎞를 만들었다. 모든 코스를 걸은 공식 완주자는 1606명, 지난해에만 624명이다. 지금까지 770만여명(추정치)이 걸었다. 올레는 국내 도보여행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고, 이 길을 치유의 길, 생명의 길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날 오후 제주시 북동부 지역에서 만난 김석주(56·부산)씨는 이미 올레를 두 번 완주하고 이번이 세 번째 완주 도전이라고 했다. 그 옆에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어머니 장예숙(88)씨는 두 번째 완주 중이다.
“제주에 오면 풍광이 좋고 사람들도 좋고, 먹을 것도 좋아요.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이 많은 코스를 걷는 게 공짜잖아요.” 장씨의 말이다. 옆에 있던 아들은 “2010년 팔순을 맞은 어머니를 모시고 남태평양을 한 달 동안 다녀왔는데, 외국에 나가서 돈 쓰지 말고 제주도 한번 가보자고 해서 그해 올레 10코스를 걸었는데 어머니가 너무 좋아해서 계속 걷게 됐다”고 말했다. 모자는 3년 전인 2014년 85일에 걸쳐 26개 코스를 완주했다. 장씨는 최고령 완주자가 됐고, 이번 완주가 끝나면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올레를 걸은 어머니가 더 걷고 싶다고 하자 김씨는 어머니가 걸을만한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한차례 올레를 완주한 뒤 함께 걸었다. 올해 봄부터 지금까지 100일 가까이 걷고 있는 모자는 제주도에 올 때마다 18~20일씩 머물며 걷는다.
이제국(52·서울)씨는 4년 전 아버지(80)가 폐암 말기로 6개월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을 받자 항암치료 대신 식이요법을 권하면서 우연히 제주올레를 알게 됐다. 위로 차원에서 아버지와 함께 4개 코스를 걸었는데 조금씩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됐다. 그 뒤 2년에 걸쳐 부모와 3남1녀의 형제자매, 그 가족 등 모두 20여명이 번갈아가며 제주올레를 걸었다. ‘3대의 동행’이다. 이씨는 “내친김에 올해 봄에는 일본 규슈올레를, 여름엔 몽골올레까지 아버지와 함께했다”며 웃었다. 이씨는 “제주올레야말로 생명의 길”이라고 말했다.
제주올레 애호가들 가운데는 두 번, 세 번, 심지어 열 번을 완주하는 이들도 있다. 이날 오전 형제섬과 송악산이 보이는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백사장 인근 초록색 풀밭에는 해녀들의 ‘숨비소리’와 닮았다는 순비기꽃이 여기저기 무리를 이루고 피었다. 제주올레 10코스(화순~모슬포)다. 산방산 뒤로는 푸른 하늘 바탕에 하얀 뭉게구름이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코스에서 만난 박현성(62·제주시 외도동)씨는 아내 정순덕(56)씨와 함께 지난 2월 ‘1년만 살자’며 제주로 이주했다. 서울에서 고교 교사로 일하다 명예퇴직한 박씨는 “이주 전 10여 차례 제주도를 왔는데 올 때마다 좋아서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이주한 뒤 올레 16코스를 처음 걸을 때는 힘들었는데 조금씩 체력이 좋아지면서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1일부터 7월16일까지 완주한 박씨 부부는 지난달 하순부터 두 번째 완주 중이다. 박씨는 “차 타면 볼 수 없는 것들, 제주도가 가진, 있는 그대로의 숨겨진 매력을 올레길을 걸으며 볼 수 있고, 걸을 때마다 만나는 식물, 꽃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1년만 살겠다고 왔는데 더 살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웃었다.
지난 6일 오후 한 탐방객이 제주올레 10코스인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서 송악산으로 이어진 길을 걷고 있다.
올레길에는 해안가의 순비기뿐 아니라 소박한 꽃향기를 뿜어내는 하얀 으아리, 흰색 바탕에 자줏빛이 도는 개요등, 노란색 방물 모양의 여우팟, 우산살이 펼쳐지는 모양으로 피는 하얀색 사위질빵 등 들꽃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같이 걷던 박씨의 여동생 정희(60)씨는 “아스팔트, 시멘트 길을 걷는 것을 싫어하는데, 올레길은 그런 길이 있어도 걸을 수 있다. 그게 올레길의 매력이다”라며 “올레길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1일부터 걷기 시작한 김세영(45·서울)씨는 네 번째 완주 중이다. 완주하면 제주올레에서만 1700㎞를 걷는 셈이 된다. 김씨에게 올레길은 날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김씨는 “어제 걸은 10코스와 오늘 걷는 10코스가 다르다”며 “바다와 산을 보며 걷는 것 자체가 마음을 놓게 해 준다. 바다 산책로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가 마음을 위로해 준다“고 했다. “제 인생에 걸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숨쉬기 운동만 하던 내가 매일 20㎞를 걸을 수 있는 ‘끌림’이 올레에 있다”는 김씨는 “1년 살기로 하고 왔는데 벌써 1년이 넘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제주올레 12코스에 있는 수월봉의 일제 해군특공기지 터.
올레 12코스(무릉~용수)에는 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이고, 빨간 칸나가 억겁의 세월을 이어온 수월봉의 화산쇄설물, 그 틈을 뚫고 만든 일제의 해안특공기지가 눈에 들어온다. 12코스가 지나가는 제주시 한경면 한장동 마을 안 길가에는 돌담 위에 노란 호박꽃과 함께 호박이 탐스럽게 익어가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학회 참석차 제주도에 왔다가 잠깐 짬을 내 17코스를 걷던 남일권(48·경북 김천)씨는 “지난해 중학생 아들과 함께 5~7코스를 걸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며 “바닷길을 걷고, 오름을 걷다가 마을로 들어가면 시골길을 걸을 수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을 갖췄다”며 길을 재촉했다.
제주올레는 제주 여행객 증가의 끌차 구실을 했다. 쇠락하던 서귀포 매일시장은 올레6코스가 지나가면서 찾는 사람이 늘어 전국 최고의 시장 가운데 하나가 됐다. 마을 구멍가게, 음식점, 민박 등 제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됐고 전국에 도보여행과 도보여행길 만들기의 기폭제가 됐다. 1천여명의 자원봉사자와 1500여명의 개인 후원자, 16개의 친구 기업이 제주올레의 버팀목이다. 일본에 이어 몽골에까지 ‘올레’라는 문화를 수출했다.
고민도 있다. 2012년 7월 올레길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큰 충격을 줬다. 안전 문제나 올레길 유지, 관리, 운영 등의 문제를 두고 제주도 등 행정기관과 사단법인 제주올레 쪽이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레길 근처에 카페 등이 줄지어 생기면서 한적했던 정취가 사라지고, 탐방객 증가로 인한 자연환경 훼손과 특정 코스 집중화 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제주올레가 있기까지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 탐방객들은 ‘벌써 10년이구나’라고 하지만 길에 피와 땀을 쏟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무국 식구들은 10년이 아닌 20~30년은 된 느낌이다. 올레가 준 빛과 그림자, 행복과 고난이 너무 강했다”고 되돌아봤다. 서 이사장은 “(10년이라는) 시일 안에 이런 열풍을 이루리라고는 처음에는 확신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잠재적인 열망이 뜨거운 마그마처럼 흐르는 것을 몰랐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피로사회라는 증거”라며 올레길 열풍 배경을 짚었다. 서 이사장은 “제주올레를 통해서 제주의 자연이나 가치를 재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큰 빛”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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