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면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골목에 있는 낙원떡집서는 1919년부터 99년째 매일 떡을 찌는 김이 오른다. 같은 시간 사직공원 근처 50년이 넘은 내자땅콩집도 과자를 반죽하기 시작한다. 아침 10시면 대학로 학림다방에 커피향이 퍼지기 시작한 지도 60년이다. 점심 때는 종로구 계동 대구참기름집에선 점심마다 깨를 짜는 고소한 냄새가 피어난다. 하루 평균 3360곳의 사업장이 새로 문을 열고 2490개 사업장이 문을 닫는 서울에서도 반세기를 넘기는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서울시는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가게들을 ‘오래가게’라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1차로 선정된 ‘오래가게’는 종로와 을지로에서 30년 이상 됐거나 2대 이상 된 가게 39곳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서울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장소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해왔다. ‘오래가게’ 중엔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가게들도 있지만, 역사문화유산의 의미는 부족하더라도 오래된 매력과 이야기가 있어 명소가 될만한 가게들을 다시 한데 엮은 것이다.
일본엔 100년을 넘긴 가게, 이른바 ‘노포’(시니세)가 수두룩하다지만 한국엔 전국을 통틀어 50곳이 채 못 된다. 미래유산에 지정됐지만 그사이 문을 닫은 공씨책방이나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서 오래가게 지정을 사양한 명동 왕실다방같은 곳은 이번에 선정되지 못했다. 162년 된 금박연은 조선 철종때부터 금박을 시작해 대를 이어가며 금박 장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24년부터 시작된 통인가게는 이름은 가게지만 현대공예품부터 고미술품까지 한데 모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행여 사라지지 않도록 가봐야 할 곳이다. 1919년 일본 상인이 문을 열어 이전을 거듭하다가 1980년대부터 인사동길에 정착한 구하산방, 1940년대 문을 열었다가 한국전쟁 때 폐업한 것을 1954년부터 지금까지 사장이 바뀌면서도 이어온 종로구 명륜동 문화이용원, 1975년부터 황학동 시장에서 엘피 레코드를 팔아온 돌레코드 등은 주인의 뚝심에 의지해 살아남은 가게들이다.
서울시는 일본 노포처럼 전통과 기술을 지닌 서울의 오래된 가게들을 발굴해 탐방기, 영상물들을 제작·배포할 계획이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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