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 속리산중학교가 28일 오후 마련한 늦깎이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식장에서 주례의 덕담을 듣고 있다.속리산중 제공
농촌에선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들 때가 있다. 한창 일이 바쁜 농번기엔 그만큼 손이 귀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충북 보은군 삼승면의 박아무개씨는 2015년 9월 라오스에서 신부를 맞았다. 늦은 결혼이기도 했지만 추수기여서 예식을 올리기도, 하객을 청하기도 쉽지 않은 때였다. 늦은 결혼이 쑥스럽기도 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지금까지 식을 치르지 못했다.
박 씨 부부의 꿈은 28일 이뤄졌다. 마을과 가까운 속리산중학교가 부부의 소원을 이뤄줬다. 속리산중학교는 이날 학교 축제 솔빛제에서 부부에게 전통혼례를 선물했다. 학생들이 신랑, 신부를 가마에 태워 식장에 입장하면서 묵은 결혼식이 시작됐다. 결혼식은 청주향교가 전통 예법에 맞게 진행했다. 마을 주민 140여명과 학생·학부모 등 대규모 하객이 이들 부부의 백년해로를 함께 기원했다. 마을 주민들은 틈틈이 익힌 화관무를 선보였으며, 마을 풍물패는 풍악을 울렸다. 학교는 학부모 등의 도움을 받아 하객들에게 국수·떡·과일 등 음식을 대접했다.
결혼식 뒤 피로연도 화려하게 진행됐다. 모래 예술가 김하준 작가가 부부와 학교에 공연을 선물했다. 속리산중의 명물인 솔빛오케스트라 연주, 학생들의 춤·난타 공연, 보은 어머니 합창단 공연 등이 이어졌다. 보은 다문화센터, 소방서, 문화원, 보건소, 노인회, 학생 동아리 등은 학교 한편에 드론시연, 떡 만들기, 목재 퍼즐 등 체험 코너를 운영해 학생·주민 등의 흥을 돋웠다.
속리산중학교 학생들이 28일 열린 솔빛제에서 학생 등이 내놓은 공예품 등을 둘러 보고 있다. 속리산중 제공
201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기숙형 공립중학교로 출발한 속리산중은 올해 학교와 마을이 문학·놀이·농부체험 등을 함께 하는 보은 행복교육지구 사업에 선정돼 틈틈이 주민과 어울리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박정자 속리산중 교감은 “학교와 주민이 만나면 언제나 즐겁다. 오늘은 이웃 다문화 가정의 오랜 바람인 결혼식이 성대하게 펼쳐져 더욱 뜻깊었다. 학교와 마을이 오늘처럼 늘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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