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유족회 등이 29일 마련한 4·3희생자 배·보상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내년 제주4·3 70주년을 앞두고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배·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소송보다는 입법을 통한 일괄 해결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문성윤 변호사(전 제주지방변호사회장)는 29일 오후 제주시 하니크라운호텔에서 열린 ‘제주4·3의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배·보상 관련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4·3특별법은 반인권적 과거를 청산해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회복해 주는 구체적 입법의 결과이며,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 주자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특별법 시행 과정에서 실질적인 명예회복이나 피해배상은 아직도 먼 실정이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유족들이 높은 관심을 보여 희생자와 유족들의 배·보상 문제가 주제여서 유족들의 관심이 컸다.
문 변호사는 먼저 ‘배·보상’ 용어부터 먼저 정리했다. 문 변호사는 민법의 손해배상청구권과 헌법의 배상청구권을 인용해 “‘보상’은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인해 국민이 재산상 손실을 보았을 때 손실을 갚아주는 것”이라며, “국가공권력의 부당한 집행으로 인해 국민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는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이 있기 때문에 ‘배상’이라야 한다. 4·3 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피해회복의 문제는 보상이 아니라 배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또 무장대에 의한 피해나 제3의 피해 유형에 대해서도 문 변호사는 “국민의 생명·재산 등 중대한 법익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국가가 국민에 대해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 국민에게 손해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국가는 배상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문 변호사는 이어 배상 문제와 관련해 “개별 소송이 제기되면 국가 쪽에서는 희생자로 결정된 시기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희생자로 결정된 시기가 서로 다르고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변호사는 따라서 △패소할 경우 국가로부터 배상을 기대하기 어려움 △국가공권력에 의한 유례없는 집단 피해를 야기한 사건인 점 △소송 제기자와 제기하지 않은 자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4·3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배상은 개별적인 사법적 소송보다는 입법적으로 일괄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제주4·3희생자6s유족회 등이 29일 마련한 4·3희생자 배·보상토론히가 유족들의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다. 허호준 기자
또 보상금 산정과 관련해서는 4·3 피해자들이 발생한 것은 1950년 이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나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등의 입법사례와 같은 방식으로는 배상금을 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액 배상의 방식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제주4·3특별볍 개정안에 ‘배상금’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종민 전 제주4·3위원회 전문위원은 “군·경 토벌대에 의한 피해만 배상하고, 무장대에 의한 피해를 받은 데 대해서는 아무런 조처가 없으면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우려가 있을 것으로 보았는데, 무장대에 의한 희생도 ‘국가의 부작위에 의한 위법’이기 때문에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정리한 것은 토론회의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상희 변호사(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장)도 “제주4·3사건도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해 집단으로 자행하거나 국가권력의 비호나 묵인 아래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사건의 성격을 같이 하기 때문에 피해구제도 같은 방식으로 입법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배상금 기준금액은 하위법령에 위임하기보다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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