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고향 해남의 선산에서 열린 시비 제막식에서 참석한 윤재걸 시인.
시인 윤재걸(69)씨가 최근 10년 글농사의 결실인 시집 <유배공화국, 해남유토피아>(실천문학사 펴냄)를 냈다. 윤씨는 이를 기념해 고향 전남 해남군 옥천면 동리 언덕에 시비를 세웠다. 이 시비는 민주유공자인 윤씨가 국립묘지 대신 고향의 선산에 묻히겠다며 미리 세운 묘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비는 너비 3m, 높이 1.5m인 검은 돌로 만들어졌다. 앞면에는 시 ‘해불양수’를, 뒷면에는 시인의 약력을 새겼다.
고산 윤선도의 11대 직손인 윤씨는 2008년 귀향해 땅끝문학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시농사를 지어왔다. 윤씨는 “그동안 글빚을 많이 졌는데 제막에 참여한 시인 묵객 70~80명한테 시집을 나눠 주며 좀 갚았다”며 웃었다.
그는 이번에 발간한 시집에 해남 귀향 이후 창작한 200편 중 53편을 추려 실었다. 시비에 새긴 시구 “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가 한 몸 되는 바다공화국! 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가 한 몸 되는 수평 공화국!”에 그의 꿈이 잘 녹아 있다.
‘해불양수-바다공화국 예찬’을 새긴 윤재걸 시인의 시비.
그는 1970년대 박정희 유신 독재를 관통하며 <후여후여 목청갈아>(1979)와 와 <금지곡을 위하여>(1984) 등 두 권의 시집을 냈지만 곧바로 판금을 당했다. 인고의 33년을 지나서야 세번째 시집을 냈다.
그는 66년 <시문학>에 ‘여름 한때’ ‘어느 병실에서’ 등 두 편이 실리며 등단했고, 75년 <월간문학>에 시 ‘용접’을 발표해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태껏 시인보다는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75~80년 <동아방송>에서 일한 뒤 신군부에 의해 해직됐고 복직해 84~88년 <동아일보>에서 일했다. 89년 6월 <한겨레> 기자 시절엔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으로 6차례 구속 위기에 몰리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후 <민주일보> <일요신문> 등에서 국장과 사장을 지냈다. 그는 르포집 <국회 5공 청문회>(1991), 평론집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1985), <정치, 너는 죽었다>(1999) 등을 내는 등 활발한 저술을 해왔다. 정부는 2001년과 2013년 심사를 통해 80년 <동아일보> 강제 해직과 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된 그를 민주유공자와 민주상이자로 인정했다.
그는 “고향 해남에서 김남주 시인이 꿈꿨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글농사를 열심히 짓겠다. 땅끝문학회 회원들과 2주마다 만나 작품을 공유하며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시를 짓다 고향에 묻히겠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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