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19일 발발한 여순사건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여순사건 기념일이 다가왔지만 희생자 지원조례가 표류하고, 연례 학술토론회마저 중단되는 등 추모 분위기가 썰렁하다.
여수시는 오는 19일 오전 10시 여서동 미관광장에서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하는 ‘여순사건 69주기 희생자 위령제’를 마련한다. 이 행사는 씻김굿, 전통제례, 3개 종단의 추모제, 추모사, 분화와 헌향 순으로 간소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사건 발발 50돌인 98년부터 18년 동안 지속했던 학술토론회는 올해부터 명맥이 끊겼다. 시 쪽에서 한해 500만원 안팎 지원하던 보조금을 3년 전부터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순사건을 다룬 논문 100여편이 발표됐던 토론의 마당이 사라지게 됐다.
기념사업을 논란 없이 진행하려면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나 ‘여수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가 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순사건 특별법과 지원조례는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몇 해째 방치돼왔다.
여수시 민간인 희생자 지원조례안은 2014년 11월과 지난 2월 두 차례 의원 발의됐지만 경우회 등 보수단체의 반발로 표류하고 있다. 이 조례안은 여수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에 묶여 있다. 이 위원회의 위원 8명 중 6명은 국민의당 당적을 갖고 있다. 조례안이 표류하자 적용의 범위를 ‘여순사건’에서 ‘한국전쟁 전후’로 고쳤지만 여전히 아무런 진전이 없다. 반면 순천·구례 등지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조례’를 만들어 추모사업을 추진 중이다.
강정희 전남도의회 의원은 “피해 지역인 우리가 가만 있는데 국가가 나설 리 없다. 특별법 제정 이전이라도 70돌 기념사업 추진, 합동 위령제 거행, 학술심포지엄 개최, 현장 안내판 정비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서희종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사회조사부장은 “여수시의회 의원 26명 중 15명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의 미지근한 태도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지역 대표로서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6개 지역 여순사건 유족회, 전남시민단체연대회의,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등은 지난 4월 “여순사건 70돌에 앞서 주민과 유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 주둔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토벌을 위한 출병을 거부한 뒤 교전이 발생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 1만여명이 숨진 비극적 양민학살 사건이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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