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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바닥엔 서해 갯벌이 갇혀 있다

등록 2017-10-26 11:35수정 2017-10-26 22:03

[현장] 한강수질조사 동행취재
신곡보 영향으로 바닥엔 찰흙같은 지층 형성
한강 수위 높이고 녹조 현상 등 환경 악영향
해마다 바닥 퇴적층 걷어내는 공사로 수십억
썰물로 모습을 드러낸 신곡수중보의 기둥들. 콘크리트 물속 벽을 기점으로 강바닥 흙은 두 가지 상태로 나뉜다.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제공
썰물로 모습을 드러낸 신곡수중보의 기둥들. 콘크리트 물속 벽을 기점으로 강바닥 흙은 두 가지 상태로 나뉜다.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제공

25일 낮12시, 한강을 따라 내려오던 배가 성산대교를 지나 안양천 물줄기와 만나는 곳에 이르렀을 때부터 슬슬 물에서 악취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강바닥 흙을 떠보니 좀전에 지나온 원효대교 아래에서 건졌던 고운 모래와는 달리 초록색 빛을 띤 검은 진흙이 나왔다. 가양대교를 지나 신곡보 쪽으로 갈수록 강바닥은 점점 갯벌에 가까워졌다. 안양천 부근과 서남 물재생센터 부근엔 물고기가 많아 강변을 따라 낚시대들이 줄을 이어 드리워져 있었지만, 물속 사정은 달랐다. 수질검사를 위해 채취한 물에선 옅은 녹조와 부유물을 볼 수 있었다.

25일 환경운동연합등 4개 환경단체가 한강 수질과 저질토 현황조사를 위해 한강 6개 지점에서 물과 강바닥 흙을 채취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25일 환경운동연합등 4개 환경단체가 한강 수질과 저질토 현황조사를 위해 한강 6개 지점에서 물과 강바닥 흙을 채취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신곡수중보로 한강의 흐름이 정체되며 매년 녹조가 나타나자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대한하천학회, 한강유역네트워크 등이 한강의 수질과 저질토 현황 파악에 나섰다. 이날 환경단체들은 가톨릭관동대학교 토목공학과 오준오 교수 연구팀과 함께 원효대교 아래, 하늘공원 건너편 안양천 합류부, 서남물재생센터 하류와 난지 물재생센터가 만나는 가양~마곡대교 중간, 방화대교 아래, 신행주대교 근처 신곡수중보 상류, 신곡수중보 하류인 장항습지 등 총 6곳에서 한강물과 강바닥 흙을 채취, 분석에 들어갔다. 생물학적산소요구량, 화학적산소요구량, 질소·인량 등 수질 지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3주 가량 걸린다. 그러나 강 곳곳으로 밀려들어온 서해의 갯벌흙이 신곡보로 인해 다시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강바닥에서 쌓이는 사실은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강 6개 지점에서 떠낸 물과 흙에선 일부 옅은 녹조와 부유물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은 시료 채취 과정
한강 6개 지점에서 떠낸 물과 흙에선 일부 옅은 녹조와 부유물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은 시료 채취 과정
1988년 정부는 제2차 한강종합개발 사업의 하나로 팔당댐에서 21㎞ 거리에 잠실수중보, 55㎞ 거리엔 신곡수중보를 설치했다. 바닷물을 막고 유람선 물길을 확보하며 간첩의 수중 침투를 막겠다는 등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별 쓸모는 없이 자연스러운 강의 흐름만 막아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신곡보가 없었다면 한강은 어떻게 됐을까? 오후 3시, 썰물로 8개 기둥을 드러낸 신곡보 하류 한강 하구에서 다시 채취작업에 들어갔다. 신곡보 상류 강바닥은 떠내기 어려울 만큼 단단하게 굳어 있었지만 이곳 강바닥은 고운 개펄흙처럼 보였다. 저수지 건너편 물에서 나던 악취도 느낄 수 없었다.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와 경기도 고양시 신평동 사이 한강을 가로지르는 높이 2.4m, 길이 1007m 콘크리트 댐은 한강을 둘로 가르고 있었다.

조사를 진행한 오준오 교수는 “신곡보를 기점으로 하류는 고운 뻘이고 상류는 모래가 썩어서 생긴 뻘층에 가까워 환경적으론 큰 차이가 있다” 며 “특히 난지·서남물재생센터가 합류하는 지점엔 녹조류·유기물 등이 정체된 것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곡보가 한강 오염의 모든 원인은 아닐지라도 큰 해를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신곡보와 가까운 신행주대교 부근 강바닥 흙은 이미 찰흙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 상태가 계속되면 녹조 등이 더욱 심해지고 강바닥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남은주 기자
신곡보와 가까운 신행주대교 부근 강바닥 흙은 이미 찰흙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 상태가 계속되면 녹조 등이 더욱 심해지고 강바닥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남은주 기자
신곡보 하류가 지나가는 장항습지는 군사보호경계구역으로 해마다 수만 마리의 철새가 찾는 곳이다. 재두루미, 개리, 쇠기러기 등 멸종위기종인 새들이 떼를 지어 습지 곳곳에 모여 있었다. 66만㎡ 규모의 버드나무 군락과 사람 키만큼 자란 억새밭에선 827종 생물이 사는데 그중 43종이 법정보호종이다. 생태계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이 곳에서 물고기는 민물가마우지를, 작은 포유류들은 삵과 점박이 물범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신곡보 상류 한강 물줄기에서도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선 이들 보호종들을 간간히 만날 수 있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신곡보 하류가 지나는 장항습지를 찾아드는 철새들. 보호습지로 지정된 이곳은 원래의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남은주 기자
해마다 겨울이면 신곡보 하류가 지나는 장항습지를 찾아드는 철새들. 보호습지로 지정된 이곳은 원래의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남은주 기자
서해바다 영향을 직접 받는 신곡보 하류쪽은 눈으로 보기에도 물과 강바닥 상태가 바다와 다르지 않아 생태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진은 신곡보 하류쪽 수질 검사. 남은주 기자
서해바다 영향을 직접 받는 신곡보 하류쪽은 눈으로 보기에도 물과 강바닥 상태가 바다와 다르지 않아 생태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진은 신곡보 하류쪽 수질 검사. 남은주 기자

밀물 때 서해와 한강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 희귀 어류도 풍부하다. 장항습지에 배를 대던 한 어민은 “여기가 한때 1년에 1억원어치씩 물고기를 건져올리던 곳”이라고 한탄했다. 지금은 신곡보로 어족 자원이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고양시의 일부 어민들은 신곡보가 있어야 현재의 물고기잡이를 유지할 수 있다며 철거를 반대하기도 한다. 미래의 불확실한, 더 큰 이익보다 지금의 확실한, 작은 이익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신곡보 가운데 김포에서 백마도까지 124m는 수문 5곳을 열 수 있는 가동보로 돼 있고, 나머지는 밀물때만 물이 올라오는 고정보다. 김포 쪽의 침식이 계속 진행되면서 김포시는 신곡보 철거를 요구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신곡보 철거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철거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신곡보를 철거해야 건강한 한강이 회복된다는 환경단체들의 상식적인 주장은 신곡보가 철거되면 한강에 급격한 변화가 온다는 반대론에 막혀 있다. 별 쓸모도 없는 신곡보는 30년째 한강을 막고 있다. 한번 있던 것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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