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하이패스가 먹통이 됐어요.”
15일 오후 4시께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대련리 고속도로 포항나들목 입구는 주차장 같았다. 나들목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 차량이 수백m 길게 줄을 섰다. 톨게이트 직원에게 “왜 이런 거냐”고 묻자 하이패스가 문제란 답이 돌아왔다. 이날 포항 북구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포항나들목의 전원이 나가며 오후 2시31분부터 오후 3시15분까지 하이패스가 먹통이 됐다.
나들목을 통과해 포항 북구 환여동으로 향하자 도로 위는 차량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또다시 지진이 올 것이 두려워 짐을 싸서 근처 바닷가에 있는 환호공원 등으로 대피하는 주민들이었다. 나이가 많은 일부 주민들은 아예 살림을 모두 싸서 자녀들 집으로 갔다. 도로 곳곳에는 주민들이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도로가에 있는 3층짜리 ㄷ빌라 건물은 벽돌로 된 외벽이 무너져 있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주차된 승용차 몇대가 떨어진 벽돌로 부서져 있었다. 아파트 마당과 주차장은 무너진 벽돌이 가득했다. 건물 곳곳의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큰 가방을 몇개씩 들고 ‘피난’을 가려는 주민들이 계속해서 건물 안에서 몰려나왔다. 이 건물 건너편에 있는 4층짜리 ㅊ맨션도 건물 외벽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ㅊ맨션 앞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김진천(73)씨는 “갑자기 땅이 흔들려 물건이 모두 쏟아지고 벽에 붙은 타일이 다 깨지길래 놀라서 집을 뛰쳐나왔다. 집을 뛰쳐나와 보니 건너편 ㄷ빌라 외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도로가에는 놀라서 뛰어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5시께 근처 대도중학교 정문에는 ‘지진 옥외대피소’라는 커다란 노란색 알림판이 세워져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승용차 30여대가 가득했다. 학교 체육관에 들어가자 6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지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급하게 나왔는지 얇은 외투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ㅊ맨션 3층에 사는 장유숙(60)씨는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아파트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텔레비전이 넘어지고 탁자와 싱크대 위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졌다.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어서 소파를 잡고 떨고 있다가 조용해지고 난 뒤 집을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ㅊ맨션 4층에 사는 김말선(60)씨는 “방에 누워 있는데 지지직 소리가 먼저 났고 이후에 갑자기 건물 갈라지는 소리가 나면서 집이 크게 흔들렸다. 화장품과 텔레비전이 다 떨어지고 화분이 모두 깨졌다. 잠잠해지고 집을 빠져나왔다.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유영숙(60)씨는 “지진이 나면서 창고가 무너지고 화장실 뒷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기어서 집 근처 놀이터로 피했다. 놀이터에 와 보니 휴대전화도 놓고 왔더라. 남편은 그래도 집이 안전하다면서 남았고, 나는 불안해서 학교 체육관에 왔다”고 말했다.
저녁 7시가 되자 학교 체육관에 모인 주민은 130여명으로 늘었다. 주민들은 차가운 체육관 바닥에 앉을 수 없어 선 채로 떨어야 했다. 포항시는 오후 6시20분께 학교 체육관에 응급구호세트와 물, 담요 등을 가져다줬다.
포항 지진 피해 현장을 경찰관이 살피고 있다.
ㅊ맨션 2층에 사는 김상기(73)씨는 “오늘 대피방송 한번 들은 적 없었고 기상청에서 지진이 났다고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만 네통 온 것이 전부다. 지금 학교 체육관에서 아무것도 없이 몇시간째 떨고 있는데 누구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일본은 지진에 대처를 잘한다고 하던데 실제 겪어보니 우리는 일본과의 차이가 너무 큰 것 같다. 행정기관은 세금으로 도대체 뭐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포항/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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