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23일 오후 제주시청 앞에서 현장실습 중 노동재해로 숨진 이민호군을 기리는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민호가 차가운 걸 아주 싫어해요. 그런데 아이가 (장례식장) 차가운 곳에 머문 지 엿새째잖아요. 이제 아이 데리고 가서 화장하면 또 다른 상처가 돼서 무너져버릴까봐…. 눈뜨면 그래도 가까운 데 있구나, 내 옆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24일 아침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 3학년 이민호군이 안치된 제주시 부민장례식장에서 만난 이군의 어머니 박정숙(50)씨는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평소 목 디스크로 고생해온 박씨는 이날 목 보호대를 하고 있다가 조문객을 맞기 위해 진통제를 맞기도 했다.
숨진 이군보다 한살 많은 형 이현(19)군도 이군과 같은 학교에 다녔고, 지난해 현장실습을 나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군은 “지난해 감귤 선과 작업을 하는 일로 알고 갔는데 감귤을 나르고 포장하고 판매하는 일까지 했다. 감귤 수확철이 아닐 때는 어판장으로 가서 갈치 파는 일도 했다”고 말했다.
회사 쪽의 무성의로 발인 예정이었던 21일을 넘긴 지 사흘째인 24일, 이군 부모가 이군의 사고와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합동진상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내년 초까지 전국 실습업체 3만여곳에 대해 전수 실태점검을 할 계획이다. 이날 이군의 빈소에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앞줄 왼쪽 둘째)와 이학영 을지로위원장(앞줄 왼쪽 첫째), 오영훈 정책위 부의장(앞줄 왼쪽 셋째), 강병원 의원(앞줄 오른쪽 둘째)이 24일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음료 제조공장을 찾아 10대 현장실습생 사망사고에 대해 노동부 등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이학영·강병원·오영훈 의원은 교육부·고용노동부 관계자들과 함께 이군이 사고를 당한 제주 작업장을 찾아 사고 원인 등을 직접 조사했다. 우 원내대표 등은 이어 제주시 부민장례식장의 이군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우 원내대표는 유족들에게 “현장에 가보니 안전장치가 급조돼 있다. 고등학생 현장실습생에게 장시간 노동을 하게 하고 회사에서 중요한 생산라인을 맡겨서는 안 되는데 맡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별근로감독과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제주시 부민장례식장 고 이민호군의 빈소를 찾아 이군의 부모한테 위로의 말과 함께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우 원내대표 일행은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와 면담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면담에서 “현장실습 제도는 교육을 위한 제도가 아닌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값싼 노동력을 쓰려는 것이고, 이런 방식의 현장실습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앞장서서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 현장실습제 폐지까지 포함해 직업교육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전면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24일 오후 제주시 연북로 부민장례식장에 마련된 이민호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이날 오후 이군 빈소를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유 대표는 조문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다. 회사에서 사과하지 않고 책임을 민호군에게 떠넘기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회사 책임임을 분명히 밝히고 근로감독, 진상조사가 빨리 이뤄져서 정부가 조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확실히 관리하고 안전점검을 하도록 시스템이 이뤄지도록 챙기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삼화·김수민 의원도 빈소를 찾았으며,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25일 조문할 예정이다.
유족들은 빈소를 찾은 정치인들에게 “제2, 제3의 민호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제도를 개선해달라.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과 대조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지 15일이 지난 이날 학교 쪽은 학교 누리집에 ‘고 이민호군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추도문을 올렸으나, 제주도교육청은 사과문, 대책 발표 등을 하지 않고 있어 유가족 등의 분노를 사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김남일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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