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려 특성화고 졸업생인 복성현씨가 청소년 노동인권 보장을 촉구하며 발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 교육청과 해당 기업에 대한 책임 추궁,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를 위한 입법 활동 등을 각각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국회에 요구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무사는 그에게 “고졸이 어딜 취업하겠느냐. 여기 있을 때 잘하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줄 모르고 갔느냐. 버텨라”라고 했다.
특성화고 졸업생 복성현(19)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세무사 사무실에서 6개월 동안 회계관리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다. 3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근로계약서와 협약서에 하루 7시간씩 일한다고 서명했지만 실제 매일 9시간 넘게 일해야만 했던 고된 현장실습생 생활을 털어놓았다. 이틀씩 밤을 새운 날도 있었다. 높디높이 쌓인 장부를 다 처리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세무사 사원들은 “내가 1~2년차일 때도 저만큼 일을 시키지 않았다”며 현장실습생을 수습사원보다 독하게 일을 시키는 회사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일하고 일을 하든 안 하든 한달에 115만원만 받았다. 선생님은 “교육청에 보고하기엔 월급이 너무 적다”며 성현씨 월급을 당시 최저임금인 126만원으로 고쳐 적었다. 성현씨는 “그때 누군가 회사와 학교에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면, 최소한의 법적 보호는 받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30일 서울시는 서울고용노동청,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현장실습생 안전·노동인권보호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을 보면,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인권침해를 막고 사업장 안전을 분석하기 위해 실습생을 파견하는 전체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조사와 실습생 전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다.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조처다. 1일부터는 서울의 현장실습생이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땐 120다산콜센터로 전화하면 공인노무사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청소년이 자주 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신고나 상담하는 창구를 만들기로 했다. 학생들이 현장실습에 나가기 전에 자신의 권리와 대처 방안을 알려주는 노동인권 교육도 도입될 예정이다. 현장실습생을 고용한 업체는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작성했는지, 실습생을 위험 업무에 배치했는지, 노동시간을 준수하는지와 임금체불을 하는지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받는다. 중간에 현장실습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오는 학생을 위한 복귀 지원도 강화한다. 그동안 복귀 지원 제도가 있었지만 학생들은 학교에서 받을 불이익과 사회 부적응자라는 시선이 두려워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는 조기 복귀생을 위해 심리치유 전문가와 일대일 상담을 해 새 실습장에서 일하거나 또는 학업을 계속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서울엔 74개 특성화고에 학생 1만5000명이 다니고 있다. 올해 현장실습을 다녀온 학생들은 7500명이다. 서울시가 내놓은 안은, 학교와 노동청이 각각 마련해오던 대책에서 벗어나 현장과 실습생의 인권에 초점을 맞춘 통합대책이어서 주목된다. 지난해 노동부와 교육부가 각기 현장실습 업체를 점검했는데, 교육부 조사에선 1% 미만에 그쳤던 임금지급 위반 업체가, 노동부 조사에선 14.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처에 따라 관리·감독 수준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관리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서울지역 청소년노동인권 지역단위 네트워크의 공군자 활동가는 “현장실습생에 대한 인권침해와 부당노동행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실습이 ‘취업형’이 아니라 ‘학습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교육부는 30일 전국교육감협의회를 거쳐 2018년부터 현장실습을 ‘학습형’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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