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빌미로 젊은 여성들을 등쳐 18억원에 가까운 돈을 가로챈 가족사기단이 검찰에 붙잡혔다.
수원지검 형사4부(부장 서정식)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김아무개(50·여)씨와 남편 이아무개(47)씨를 구속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김씨는 2011년 1월 전 남편과 낳은 아들 박아무개(29)씨를 ㄱ아무개(26·여)씨와 교제하도록 한 뒤, 같은 해 혼인신고 없이 결혼식만 올리고 같이 살게 했다. 김씨와 남편 이씨 등 일가족은 결혼을 준비하던 때부터 ㄱ씨 부모에게 거액의 혼수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해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까지 13억원을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아들 박씨(구속)는 대전의 한 폭력조직 조직원인 자신을 의사 또는 사업가로 꾸미는 등 직업과 나이, 재산을 모두 속였다. 김씨와 이씨는 계모임 등을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자신들이 화목한 가정인 것처럼 연출해 호감을 산 뒤 여성들이 결혼을 결심하면 그때부터 갖은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이들의 수법에 당한 여성들은 ㄱ씨를 비롯해 모두 6명에 달했다. 김씨 등은 2, 30대인 피해 여성들을 상대로 지난해 7월까지 17억97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사기단 일당은 피해 여성 2명과는 결혼식을 했으며, 1명과는 혼인신고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 일가족은 피해 여성에게서 더는 돈을 받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잠적하고 다음 범행을 준비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또한, 피해 여성들은 이들을 고소했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생긴 갈등”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박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다.
이들의 범행은 지난해 8월 <에스비에스>(SBS)의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재를 시작하자, 박씨가 자수하면서 드러났다. 박씨는 1건에 대해서만 자수했지만, 검찰은 추가 수사를 벌여 다른 피해 사례를 확인해, 박씨를 구속기소하고 달아난 김씨와 이씨를 지명수배했다.
특히 검찰은 지난 2013년 말 박씨와 사귀다 3천만원을 뜯긴 20대 여성은 지금까지 실종 상태인 점을 중시해 범죄피해 연관성 등을 열어 놓고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이들에게 10억원이 넘는 돈을 뜯긴 ㄱ씨는 자신이 피해를 본 사실을 모르고 김씨 등과 함께 달아났다가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지난달 9일 이들에게서 간신히 탈출했다. 김씨 등은 생활비를 벌어오라며 ㄱ씨를 수시로 구타하는 등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에게서 탈출한 뒤에도 자신의 사기 피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ㄱ씨를 설득해, 지난달 19일 강원도 고성에서 김씨와 이씨를 붙잡았다. 검찰 관계자는 “ㄱ씨는 인질이 인질범에 동화되는 현상을 일컫는 스톡홀롬 증후군에 빠져 오랜 시간 자신이 김씨 일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수원/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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