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17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한전 적폐청산’을 촉구했다.
경남 밀양에 765㎸ 초고압 송전탑 69개를 세우던 한국전력은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2013년 9월부터 밀양 5개면 30개 마을 1800여가구에 ‘돈폭탄’을 퍼부었다. 당시 공식적인 보상비는 185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60%인 111억원은 마을별 마을공동사업비로, 나머지 40%인 74억원은 가구당 평균 40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가구별 개별보상은 국책사업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보상 방식이었다.
개별보상을 하자,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하던 많은 주민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주민이 갑자기 2200여가구로 불어나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위장전입자도 있었고, 가족끼리 주소를 나눈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193가구는 보상금을 거부하며 여전히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마을마다 찬반 주민들 사이에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돈폭탄’이 쏟아지면서 주민과 한전의 싸움에서, 주민끼리의 싸움으로 바뀐 것이다.
93가구가 사는 밀양시 상동면 ㄱ마을은 찬성 62가구와 반대 31가구로 나뉘었다. 이 마을에 배정된 보상금은 마을공동사업비 5억3400만원, 개별보상금 3억5600만원 등 8억9000만원이었다. 찬성 주민들은 2014년 말 반대 주민들을 제외하고 자기들끼리 전체 마을공동사업비로 영농법인을 만들어 땅을 산 뒤, 이를 팔아 1인당 650만원씩 나눠 가졌다. 이들은 또 2015년 말 반대 주민들의 미수령 개별보상금 1억1800만원까지 받아 마을기업 사업을 추진했다.
반대 주민 안아무개(68)씨는 이를 문제 삼아 지난해 2월 찬성 주민을 상대로 창원지법 밀양지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12일 재판부는 보상금은 마을 전체 재산이 아니라며, 찬성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17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상급법원에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대책위 법률간사인 정상규 변호사는 “과반수 주민을 매수하는 것으로 보상을 완료했다고 한다면, 반대 주민의 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번 판결은 소수의 권리를 다수가 빼앗아가는 폭력을 허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의 반대 주민 대표인 이남우(75)씨는 “돈과 폭력으로 건설한 송전탑은 땅에 박힌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에 박혀 있다. 오늘은 눈물로 호소하지만, 그래도 송전탑을 뽑아내지 못한다면 다음엔 목숨을 바쳐 호소할 것”이라고 절규했다.
한전은 울산 신고리원전 3·4호기에서 생산할 전기를 전국에 공급하기 위해 2008년 8월부터 2014년 말까지 신고리원전 3·호기에서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까지 5개 시·군 90.5㎞ 구간에 밀양 69개 등 송전탑 161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 2명이 목숨을 끊고, 383명이 입건됐다. 청와대는 경찰 민간조사단을 구성해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 등 인권침해가 이뤄진 사건 5건의 진상조사를 할 것이라고 지난 14일 밝혔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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