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를 걷는 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올레 10코스를 걷다 보면 제주도 문화유산과 근현대사가 눈에 보인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고운 모래사장을 따라 올레길을 걷다 보면 사람 및 동물 발자국 화석산지가 있다. 2005년 9월 천연기념물 제464호로 지정된 곳이다. 유명 관광지인 송악산 해안에서는 일제가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파놓은 해안 특공기지가 보인다. 이곳에서 20여분 남짓 더 걸으면 고사포 진지와 섯알오름 예비검속 학살터를 만나게 된다.
제주4·3연구소가 26일 펴낸 <길 위의 4·3>에는 제주올레에서 만나는 4·3 유적들이 녹아 있다. 이 책은 올레 10코스에서 제주시 한복판에서 끝나는 17코스까지 따라 걸으며 곳곳에 흩어져 있는 4·3유적을 소개하고 있다.
각 올레 코스의 경로와 전반적인 개요를 싣고, 그 코스를 걸으면서 만나는 개별 유적들은 다양하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 11코스에서는 대정읍 지역 4·3 위령비와 경찰서장 문형순 공덕비, 면장 김남원 목사 조남수 공덕비 등을, 12코스에서는 왕계동산 4·3희생자 위령비와 평지동 4·3성터 등을 만날 수 있다.
‘곶자왈로 들어간 올레’인 13코스에서는 4·3 때 해안마을로 소개(강제이주)된 ‘잃어버린 마을 조수리 하동’과 저지리 수동의 4·3성터를, 14코스에는 4·3의 개인사적 비극을 보여주는 고 진아영 할머니 삶터 등을 볼 수 있다. 제주시 도심지로 들어오는 17코스에는 제주공항과 북부예비검속희생자 위령비, 3·1절 기념대회가 열렸던 제주북초등학교, 관덕정 등 4·3 흔적들이 몰려 있다.
이 책에는 8개 올레 코스의 34곳의 4·3유적을 싣고 있으며, 올레에서 만날 수 있는 4·3과 관련한 다양한 풍경과 이야기, 사진을 담고 있다. 포켓북 크기의 책자로, 이 경로를 직접 답사하는 이들이 쉽게 휴대하며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제주도 대부분의 관광지, 명승지가 4·3의 현장이듯이, ‘치유의 길’인 제주올레 또한 4·3의 흔적을 곳곳에 담고 있다. 연구소 쪽은 “올레길을 걸으며 4·3의 시대를 함께 껴안고 미래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제주도의 후원을 받아 제주4·3연구소가 기획과 집필을 맡고, 도서출판 한그루가 편집과 제작을 맡았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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