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ㄱ씨 아파트 출입문에 ‘수사중 출입금지’ 띠가 붙어 있다.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우편함엔 신용카드·수도·전기·임대료 등 생활비 요금 독촉 고지·청구서가 넘치도록 꽂혀 있었다. 족히 두 달 치는 돼 보이는 고지서엔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6일 오후 5시18분께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ㄱ(41)씨와 딸(3)이 숨져 있는 것을 소방관이 확인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딸은 침대 위 이불 속에, ㄱ 씨는 침대 아래에 숨져 있었다. 숨진 시점 등을 확인하려고 부검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ㄱ씨가 남긴 유서에는 “남편이 숨진 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혼자 살기 힘들다. 딸 먼저 데려간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산에서 약초를 캐던 ㄱ씨의 남편은 지난해 9월께 증평의 한 야산에서 “미안하다. 생활이 어렵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ㄱ씨의 주검 상태, 우편함에 남은 고지서 등으로 미뤄 1~2개월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숨지기 전까지 누구도 이들의 어려움을 알지 못했다.
모녀는 정부의 복지사각지대 관리·감독체계에서도 철저히 소외돼왔다. 최아무개 증평읍사무소 맞춤형복지팀장은 “ㄱ씨는 딸이 태어났을 때 양육수당(10만원)을 신청한 것을 빼곤 복지 관련해선 아무런 도움을 청하지 않아 어려운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국민연금·건강보험료 체납, 단전·단수 등에 의한 복지 지원 대상자 통보도 없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기요금이나 국민연금 등을 체납하는 이가 발생했을 때, 한국전력공사, 국민연금관리공단 등으로부터 명단을 넘겨받아 해당 지방정부에 통보하는 ‘찾아가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461세대, 올해 125세대를 증평군에 통보했다. 그러나 이 명단에 이들 모녀 가정은 포함되지 않았다.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8일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에 복지전달체계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현재 확인하고 있다”며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 대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웃도 알지 못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수도·전기·임대료 등이 밀려 독촉은 했지만 형편은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ㄱ씨의 작은아버지도 경찰에서 “왕래가 별로 없어 어려운 사정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ㄱ씨는 2015년 신축한 한 임대 아파트에서 남편, 딸과 살았다. 임대보증금 1억2500만원에 월 임대료가 13만원 정도였다. 같이 살던 ㄱ씨 어머니는 지난해 9월께 숨졌다.
ㄱ씨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직업이 없었던 ㄱ씨는 주 소득원인 남편이 숨져 다달이 73만원(2인 가족 기준)가량 긴급 생계비를 받을 수 있었다. 단 채무를 뺀 재산이 7250만원이 넘지 않아야 한다. 경찰은 “ㄱ씨가 채무로 고민했다는 얘기가 있어 확인하고 있다. 빚이 아파트 보증금 관련 대출인지, 사업 관련 자금인지 등을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증평/오윤주 기자,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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