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경 4·3유족회장(왼쪽)과 박찬식 4·3범국민위 운영위원장이 9일 오전 4·3과 관련한 미국의 사과와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서울 주한미국대사관을 방문하고 있다. 4·3범국민위 제공
제주4·3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공개서한문이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달됐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미대사관을 찾아 제주4·3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서한문을 전달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제주4·3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성명 발표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국내에서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미 대사관에 서한을 전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4·3유족회 등은 이날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달한 공개서한문을 통해 “4·3 학살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미군정은 해방 직후 한반도 38선 이남에 존재한 실질적 통치기구였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매도해 제주사람들을 탄압했다”고 주장했다.
박찬식 4·3범국민위 운영위원장과 양윤경 4·3
이들은 “미군정은 미군 대령을 제주도에 파견해 제주 현지의 모든 진압작전을 지휘하고 통솔했다. 그는 4·3 당시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다’라며 강경 진압작전을 지휘했다. 이는 미군정이 4·3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제주도민을 학살한 책임은 이승만 정부와 미국에 있다”며 “미군은 초토화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정찰기를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토벌대의 무기와 장비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미군정이 4·3 학살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들은 “미국 정부는 4·3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며 “4·3 당시 미군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의 역할에 대한 진상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윤경 유족회장은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4·3에 대한 미국 책임을 묻는 서명운동도 지속해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들 단체는 지난 7일 오후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미대사관 쪽이 “기자들이 있으면 서한을 받지 않겠다”며 거부해 대사관 정문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연좌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일어난 제주4·3의 진압과정에서 당시 미군정과 주한미국임시군사고문단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보여주는 미국의 각종 문서가 발굴되고 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