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주4·3 70주년 ‘재일본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열려 추모행사와 공연이 이어졌다.
“1948년에 한림중학교 몇 학년이었습니까?” “3학년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재일동포 김정삼(89)씨와 박영만(89)씨가 4·3사건을 피해 각각 일본 오사카로 밀항한 지 70여년 만에 처음 만나 4·3사건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모두 18살 때 죽음을 피해 일본으로 넘어왔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22일 오후 재일본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열린 일본 오사카시립 히가시나리구민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 살아온 안부를 물었다.
같은 재일동포 고춘자(78)씨는 “지난 4월3일 제주에서 열린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한 뒤 어머니 산소를 찾아 ‘대통령이 사과했으니 이제는 안심하시라’며 절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 때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사과하겠다고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할머니가 끌려가 총살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던 고씨 어머니는 4·3사건이 명예회복되기 전 눈을 감았다. 고씨의 외삼촌 2명은 4·3사건 때 총살되거나 행방불명됐다.
22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주4·3 70주년 추모행사에서 제주 한림중학교 동창인 김정삼(89·왼쪽)씨와 박영만(89)씨가 70여년 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 4·3사건 70주년 희생자 위령제 실행위원회 등이 공동 주최한 위령제에서 창작 판소리 ‘4월 이야기’가 공연될 때 재일동포들은 흐느꼈다. 과거 일본에서 4·3위령제가 열릴 때는 200~300명 정도가 참석했지만, 문 대통령이 사과한 올해엔 재일동포와 일본인 등 700여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이 행사를 주최한 후지나가 다케시 오사카산업대학 국제학부 교수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긍정적인 환경이 추가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거리가 가까운 편인 제주와 일본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일제 때도 많은 제주 사람들이 일본을 드나들었고, 4·3사건 때 일본은 제주 사람들에게 피난처 노릇을 했다. 특히 4·3사건 때 많은 제주도 사람들이 학살을 피해 숨어든 오사카에서는 유족회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활동이 이뤄졌다.
22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본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서 참가자들이 4·3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헌화를 하고 있다.
앞서 21일엔 도쿄 호쿠토피아 사쿠라홀에서도 제주도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도쿄 주최로 70주년 추모행사인 ‘잠들지 않는 남도’가 열렸다. 재일동포와 일본인 1500명이 몰리는 바람에 행사장은 계단까지 꽉 찼다. 이 행사에선 일본에서 4·3의 진상을 알린 소설 <화산도>의 작가 재일동포 김석범 소설가는 최근 자신이 일본의 대표 월간지 <세카이>(세계)에 연재하는 내용을 소개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고립된 섬, 제주도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났다. 생선이나 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 잘라내듯이 육체와 정신을 난도질하는 살육이 자행됐다.” 그는 또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 때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는 역사적인 발언이다”고 강조했다.
2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주4·3 70주년 추모행사 ‘잠들지 않는 남도’에서 조동현 제주도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도쿄 회장(왼쪽)의 진행으로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씨와 문경수 리쓰메이칸대 명예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안에서 4·3사건의 역사적 진실이 은폐됐을 때도 진상규명 교두보 역할을 해왔던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선 4·3의 진실을 역사에 기록하길 원한다. 오사카 4·3유족회와 실행위원회는 이날 “오사카에서 4·3위령제를 해마다 개최한 지 20년이 흘렀다. 오사카에 위령비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위령비 건립 자금 모금 운동에 들어갔다. 오광현 유족회장은 “오사카는 4·3의 현장이다. 시민의 힘으로 위령비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도쿄·오사카/글·사진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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