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내 아들 삼킨 그 기계, 아무 점검 없이 오늘도 돌아가더라”

등록 2018-05-04 14:58수정 2018-05-04 22:05

고 이민호군 아버지 “아들 죽은 지 6개월, 바뀐 것이 없다”
공동대책위에 편지 보내 제주교육청·노동부 비판
4일 교육감 면담해 파견형 현장실습 않기로 합의
제주도 학생문화원에 민호군 추모비도 설치하기로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오른쪽) 등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오전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왼쪽)을 만나 추모조형물 설치와 현쟝실습제도 개선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오른쪽) 등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오전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왼쪽)을 만나 추모조형물 설치와 현쟝실습제도 개선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아들을 잃은 지 6개월, 제주 특성화고 3학년이었던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56)씨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그 전에 잘 몰랐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손팻말 시위도 벌였다.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4일 이씨와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은 이석문 제주도 교육감을 만나 1시간15분가량 격론을 벌였다. 이들은 다시는 민호군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현장실습 제도를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교육감에게 앞으론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하지 않기로 약속받고 앞으로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제주도 학생문화원 중앙광장에 민호군 추모비 설치도 합의했다. 이날도 아버지 이씨는 여전히 분노하고 허탈해했다.

앞서 3일 아버지 이씨는 민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은 ‘민호를 보내고 아빠가 세상에 보내는 글’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써서 공동대책위를 통해 공개했다. 이 글에서 이씨는 현장실습생 제도의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씨는 “아들의 사고 이후 행정 관료들은 사건의 조기 수습에만 급급했다. 교육청의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도 형식적인 것에 그쳤다. 사고 발생 원인이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고, 아무도 처벌받거나 책임진 사람이 없다. 현장실습생의 연속된 죽음에 문재인 대통령도 민호의 이름을 언급하며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라고 했지만 아직도 사건에 대한 어떠한 원인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교육청을 비판했다.

이씨는 “자식을 집어삼킨 기계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점검을 잘 하고 손을 보면 된다고, 두 번 다시 사고 없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계는 안전 점검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노동부에서는 (민호군이 숨진) 공장에 아무런 말없이 작업 중지를 해제했다. ‘왜 공장이 가동되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가동된 것’이라는 답변으로 본인들의 역할을 다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민호를 보내고 후회도 많이 했고, 두 번 다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다. 내가 왜 이래야 하나, 누구를 위해 이래야 하나, 후회만 들뿐 쓰러질 것 같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민호를 보내며 가슴에 손을 얹고 했던 약속을 실행하고 싶을 뿐이다. 너무 힘들고 괴롭고 가슴이 다 찢어져 견디기가 힘들다”고 적었다.

이씨는 아들을 잃은 개인적인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도 썼다. “민호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다. 자식은 이 세상에 없고 저와 엄마(아내)는 일상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 시간이 야속하게 잘만 흘러간다.” 이씨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세월호 유가족들도 만났다. 이씨는 “이번 사고를 겪으며 저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게 됐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분들이 4주기가 지나도록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이유가 제가 버티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아래는 고 이민호군 아버지가 쓴 편지 전문

민호를 보내고 아빠가 세상에 보내는 글

민호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식은 이 세상에 없고, 저와 엄마는 일상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 시간이 야속하게 잘만 흘러갑니다.

오늘 이석문 교육감의 재선 출마 기자회견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민호의 사고 이후 왜 교육청이 약속한 추모조형물 등의 부분을 지키지 않고 외면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민호를 외면한 적이 없다. 서로 합의를 보는 과정이다’라고 했다지요. 민호 아버지로서 이석문 교육감에게 부탁합니다. 민호의 이름을 들어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을 위한다며 교육감에 출마하여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마십시오. 민호를 잊지 않았다면 5개월이 넘도록 시간만 흘려보내지 않았겠죠. 오로지 출마에만 신경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민호 장례식장에서 교육청에서 추모비를 세우겠다는 말을 먼저 해서 받아들였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요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저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들이 4주기가 지나도록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이유가 제가 버티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사고 이후 행정 관료들은 사건의 조기 수습에만 급급했습니다. 교육청의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도 형식적인 것에 그쳤습니다. 사고 발생의 원인이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고, 아무도 처벌받거나 책임진 사람이 없습니다. 현장실습생의 연속된 죽음에 문재인 대통령도 민호의 이름을 언급하며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하라고 했지만 아직도 사건에 대한 어떠한 원인 (규명)조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실습생을 보내기 전 현장에 대한 점검 및 안전에 대한 실사를 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노동부와 같이 현장 방문을 할 생각도 않고, 노동부에 협조공문도 보내지 않은 교육청 및 교육감은 직무유기 및 근무 태만을 한 것입니다. 표준협약서에는 공장이 이 협약을 지키지 않으면 교육청에서 공장에 제재할 수 있는데, 교육청은 손 놓고 있고 어떠한 행동이나 제재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자식을 집어삼킨 기계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점검을 잘하고 손을 쓰면 된다고, 두 번 다시 사고 없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는 안전점검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노동부에서는 공장에 작업중지를 해제해 주면서 아무런 말없이 해제했고, 저가(제가) 왜 공장이 가동되느냐는 질문에(질문하자)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가동된 것이니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답변으로 본인들에 역할은 다했다고 합니다. 과연 노동부와 교육청이 원칙대로 했으면 이 사고가 일어났겠냐고 반문을 안 할 수가 없고 민호가 학생으로 그 현장에 실습 나가 실습 중 3번에 사고가 났고 그 사고를 모르고 있었던 교육감도 있습니다.

이석문 교육감은 왜 법에서 정한 교육청의 관리·감독 역할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민호가 첫 번째 아니 두 번째 사고로 다쳤을 때라도 규정대로 보고가 잘 되고 했으면 저의 아들 민호가 죽었을까요. 규정을 제대로만 했으면 민호는 웃는 얼굴로 엄마와 형과 저와 같이 지내고 있겠죠.

이번 사고는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교육관료들의 안전 불감증이 원인입니다. 교육청 관료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합니다. 저한테 교육청에서 먼저 한 말이 이번 사고로 민호의 추모비를 세울까 한다고 하여 기왕 세울 거면 교육청에 세워라. 왜 추모비를 교육청에 세워 교육공무원들이 각성하고 반성하여 두 번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가지라는 뜻이다 하고 장례식장에서 이석문 교육감에게 말했고 교육감은 약속했습니다.

이석문 교육감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겁니까

이석문 교유감은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의지가 있기는 한지 의구심이 듭니다. 올해도 제주도에서 현장 실습이 진행될 것입니다. 민호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민호의 죽음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 교육청?노동청?공장 할 것 없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고 더 이상 확대를 막기 위해 외면하는 모습만 보게 되어 저는 모든 공직자들이 한결같이 자기들의 이익에만 신경 쓰고 이번 일로 자기들이 피해입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한 스러울 뿐입니다.

결국은 이 사고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결론은 힘없고 돈 없는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운 부모가 잘못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모든 책임은 엄마·아빠한테 있다는 것처럼 자책하고 비관하고 이런 세상에 내가 굳이 삶을 계속해야 하는가. 내가 지금 왜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해야 하는가. 나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닌데 왜 내가 이래야 하나 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끝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민호를 보내고 후회도 많이 했고, 두 번 다시 이런 사고가 재발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는데 저를 힘들게 하는 교육청·임직원 및 교육감. 모든 것을 회피하고 책임 없는 말만 하는 노동부. 남의 일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는 제3자들.

저 자신 위해 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왜 이래야 하나 누구를 위해 이래야 하나 후회만 들뿐 쓰러질 것 같고,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민호를 보내며 가슴에 손을 얹고 했던 약속을 실행하고 싶을 뿐입니다.

너무 힘들고 괴롭고 가슴이 다 찢어져 견디기가 힘드네요. 그만하겠습니다.

이만 끝을 내겠습니다.

2018. 5. 3.

민호 아빠가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가 쓴 편지1.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가 쓴 편지1.

편지2.
편지2.

편지3.
편지3.

편지4.
편지4.

편지5.
편지5.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