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의자 박아무개씨가 지난 16일 체포돼 경찰에 압송됐으나,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19일 새벽 풀려났다. 허호준 기자
9년 전 제주를 불안에 떨게 했던 이른바 ‘보육교사 살인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경찰이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새로 제시한 동물 사체실험 결과 등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 단계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또다시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제주지법 양태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강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박아무개씨에 대해 “피해자가 피의자의 택시에 탔다는 사실 등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이 제출한 범행 시점과 당시 폐회로 텔레비전 영상, 섬유 등 증거물들은 대부분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박씨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내 첫 동물 사체실험 결과를 통한 사망 시점을 특정한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 부장판사는 “과거 초동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가 (2009년) 2월1일 사망했음을 전제로 수사가 이뤄지기도 했던 점에 비춰, 피해자의 사망 시점이 2월1일이라는 최근의 감정 결과를 전혀 새로운 증거로 평가하기 어렵고, 범행의 직접 증거로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이 ‘유의미한 증거’라고 밝혔던 섬유에 대해서도 “박씨의 택시 안에서 발견된 섬유(실오라기)도 피해자가 입었던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 유사하다는 의미에 그칠 뿐”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피해자의 오른쪽 무릎 등에서 당시 피고인이 입고 있던 남방의 섬유와 유사한 면섬유가 발견됐다는 감정 결과를 증거로 제시했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경찰 수사가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찰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공식 입장을 내어 “관련 증거를 보강해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직접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사건이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보육교사 이아무개(당시 27살)씨는 지난 2009년 2월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택시를 탔다가 실종됐으며, 일주일 만인 8일 오후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당시에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돼 조사를 받았으나 명확한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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