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수사의 수요는 줄고 있는데 경찰은 보안수사 인원을 계속 늘려왔다. 청와대의 방침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 업무까지 넘겨받으면 경찰이 ‘보안 공룡’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경찰의 보안수사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남북 간 체제 경쟁이 약화되면서 보안수사의 수요는 계속 줄고 있는데, 경찰은 보안수사 인원을 계속 늘려왔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방침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 업무까지 넘겨받으면 경찰이 ‘보안 공룡’이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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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경찰, 활동은 줄었는데, 인력은 오히려 늘어 국정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넘겨받는 경찰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는 지난달 3일 서울지방경찰청이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통합 보안수사대 청사를 새로 짓겠다고 나서면서 더욱 커졌다. 시민단체들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비밀·고문·조작 수사’의 대명사였던 대공분실을 모두 없애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경찰은 옥인동 대공분실 자리에 통합 보안수사대 건물을 지어 서울경찰청 보안수사1~5대 126명을 모두 옮길 계획을 갖고 있다.
앞서 경찰은 전체 보안수사 인력 규모도 꾸준히 늘려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병훈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 전국 지방경찰청별 보안수사대 인원 현황’을 보면, 보안 경찰관 규모는 2013년 452명에서 지난해 7월 580명으로 3년 반 만에 128명(28.3%)이나 늘었다. 주로 서울, 경기, 대전, 광주, 울산, 충북, 제주 등 지방경찰청에서 인원이 늘어난 결과였다.
이렇게 보안경찰의 수가 많다 보니 보안사건 내사 건수도 매년 3천~4천건에 이르렀다. 경찰개혁위원회가 경찰청에서 받은 ‘최근 10년 국가보안법 내사 건수’를 보면, 보안 경찰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인 2008~2016년 사이 매년 2800~4300건의 내사를 벌여왔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내사 건수는 1761건으로 급감했다. 더욱이 이렇게 많은 내사가 실제 입건으로 이어진 경우는 2008~2017년 사이 40~151건에 불과했다. 전체 내사 건수의 1.0~4.1% 수준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검거도 2010년 151명 이후 2012년 109명, 2014년 66명, 2016년 60명, 2017년 45명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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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피검거자 중 54%가 논란 많은 ‘찬양·고무’ 혐의 더욱이 3년 반 만에 28%나 늘어난 보안경찰이 잡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절반 이상은 7조 1항과 5항인 ‘찬양·고무’ 혐의였다. 소병훈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보안수사대가 검거한 국가보안법 위반자 혐의’를 보면, 2013~2017년 사이 4년 반 동안 검거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348명 중 54%인 187명이 ‘찬양·고무’ 혐의였다. 찬양·고무 조항은 국가보안법 전체 내용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폐지돼야 할 악성 조항으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가 추진됐을 때도 법률 폐지가 안 된다면 이 조항만이라도 없애자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로 검거한 사람은 최근 4년 반 동안 단 6명뿐이었다. 500여명의 보안경찰관이 1년에 1.2명씩 간첩을 잡은 셈이었다. 소병훈 의원은 “논란 많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에 대한 수사를 제외하면 보안경찰관이 잡은 위반자는 1년에 20~30명이다. 그중 간첩은 1명 정도에 불과하다. 보안업무에 비교해 보안경찰 인원이 지나치게 비대하다. 보안수사가 경찰로 통합될 예정이므로 보안경찰의 규모나 수사 내용이 적절한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상태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는다? 비효율적인 보안경찰에 대한 우려를 더 크게 만드는 것은 지난 1월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 방안’ 발표다. 당시 청와대는 국정원의 국내 보안수사 권한을 경찰에 넘겨 ‘안보수사처’를 신설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안보수사처를 신설하면 국정원에서 경찰로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의 보안수사 인력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고문·조작 수사의 오명으로는 국정원과 쌍벽을 이루는 경찰이 과연 이 권한을 절제력 있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바로 나온다.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시민 입장에서는 어느 기관이 보안수사 권한을 갖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어느 기관이 갖든 인권침해와 권한남용 등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경찰로 권한이 넘어간다면 시민이 직접 감시·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