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충북 청주 중앙공원에 모인 노인들이 하루 전 지방선거 등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오윤주 기자
“고인 물은 썩는 법이여. 인자(이제) 바꿔야지유.”
14일 오후 ‘어르신 여론 광장’인 충북 청주 중앙공원 그늘에선 삼삼오오 둘러앉은 노인들이 하루 지난 지방선거 관련 이야기꽃을 피웠다. 청주의 ‘탑골공원’으로 불리는 중앙공원은 노인들의 따끈따끈한 여론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한아무개(82)씨는 “요번엔(이번엔) 야조리(모두) 1번 찍었어. 한국당이고 뭐고 이젠 안 되것어”라고 했다. “나도”, “나도”가 이어졌다. 옆에 있던 한 노인은 “뭔 소리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한 당을 찍었다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화가 난 이 노인은 자신의 성조차 묻지 말라고 했다.
충청 표심은 선거 때마다 여론의 바로미터였다. 대전, 청주는 한 차례도 연임 시장을 허용하지 않았고, 총선 땐 탄핵 바람이 분 17대를 빼곤 여야 후보를 고루 ‘황금분할’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광역단체장 모두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뽑았고, 대전을 빼곤 진보 교육감이 선출됐다.
대전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한 권선택 전 시장에 이어 유성구청장을 지낸 허태정 후보를 선택했다. 처음으로 같은 당이 연이어 당선된 것이다. 청주가 선택한 한범덕 당선자도 청주 사상 첫 재선 시장이 됐다. 유숙(47·청주시 미원면)씨는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진 보수세력들의 비상식을 상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충남은 안희정 전 지사가 여직원 성폭행 의혹에 휩싸여 사퇴하고, 유력 지사 후보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도 불륜 의혹으로 중도 낙마하는 등 악재가 잇따랐으나 양승조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피닉제’(불사조) 이인제 자유한국당 후보는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완승이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민주당 도우미’ 구실을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송아무개(59·대전 둔산)씨는 “정치는 너무 일방적이어도 안 된다. 그런데 홍 대표를 보면 표를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광역의회는 ‘상전벽해’라는 말처럼 ‘파란 나라’가 됐다. 대전은 19석, 세종은 16석 모두 민주당이 차지했다. 충남은 38석 가운데 31석, 충북은 32석 가운데 28석을 민주당이 채웠다. 충청지역 기초의회도 대부분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후보들이 표밭을 누볐지만 선거운동은 문재인이 했다”는 말이 돈다. 13일 대전·충남의 투표소에서 만난 정아무개(22·충남 천안)씨는 “남북정상회담 등 문재인 정부가 외교를 통해 한반도 위기를 타개하는 것을 보면서 모처럼 정치가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특정 정당이 압승하는 걸 우려하는 것도 편견”이라고 했다. 하지만 유재영(45·충북 옥천)씨는 “지방선거는 인물·정책 등이 위주가 돼야 하는데 중앙정치 때문에 지역이 묻힌 듯하다. 여론을 인정하지만 다른 뜻을 지닌 주민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바른 자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충청=보수’라는 흔적은 충남·북 기초단체장 선거에 남았다. 충북은 11곳 가운데 4곳, 충남은 15곳 가운데 4곳에서 한국당 단체장을 배출했다. 엄태석 서원대 교수(정치학)는 “인구·문화 등 수도권 유입·영향이 커지는 충청은 최근 선거에서 수도권 성향이 서서히 드러난다. ‘문재인 허리케인’이 충청을 강타했지만 그나마 몇몇만 영향이 적었다. 이들 지역은 인구·유동성이 적고, 노령화 비율이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송인걸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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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