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자들이 23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6길에 모여 앉아 대구퀴어문화축제 도심 행진을 막고 있다.
‘사랑’과 ‘혐오’가 맞선 자리였다. 지난 23일 낮 2시, 10번째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대구 동성로에는 수십대의 버스가 멈춰셨다. ‘레알 러브(진짜 사랑)’라는 이름을 단 버스는 서울 경기 등 전국 11곳에서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태워 대구로 왔다. 그동안 퀴어축제 쪽과 반대자들은 여러 번 충돌했지만 전국 버스가 조직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이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기자도 레알 러브 버스를 탔다.
“집사님(교회 봉사자를 이르는 말) 여기 앉으셔.” 낮1시 경남 창원의 한 교회 앞에서 출발한 ‘레알 러브 버스’에 몸을 싣자,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리를 내주었다. 마산, 창원, 진해 등에서 온 경남지역 기독교 신도들을 태운 버스는 대구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오는 7월10일로 예정된 마산교육청 앞 인권조례 반대시위 방법에 대한 격렬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박종훈 경남도 교육감이 공약한 ‘청소년 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명운동, 펼침막 제작, 시위 등을 계획하고 있었다.
23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야외무대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무대 행사를 보고 있다.
차량에 탄 사람들은 인권조례는 “청소년에게 무분별한 성관계를 허용하고 동성애를 가르치니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것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6·13지방선거 이후 조례폐지에 앞장설 보수정당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현실을 한탄했다. 주로 외부 교섭을 맡는다는 한 교인은 “우익들 힘을 빌려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대구 길목 들어서자
“이제부터 기도합시다”
행사장까지 기도소리
200m 떨어져 집회신고 했으나
양 진영 경계 허물어져
서로 ‘분노의 욕설’
젊은 신도들 반대의사 작아
“목사님이 여러번 말씀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와…
어떤 문화인지 궁금해서…”
2014년 대구 퀴어축제땐 교회단체 사람들이 축제에 오물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사랑의 버스’를 타고 가는 이번엔 분위기가 바뀐 것일까. 그러나 대구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한 목사가 권했다. “이제부터 기도합시다. 악한 것들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영적으로 무장합시다.” “더러운 것들에게 쏘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눈으로 조져버려.” 다른 교인도 동조했다. 그때부터 행사장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선 기도소리가 가득했다.
오후 2시30분 버스가 대구 중구 공평동 2·28기념중앙공원 입구에 도착하자 교인들이 티셔츠를 나눠주었다. 흰색 티셔츠 앞에는 엄마 아빠가 아이들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뒷면에는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해요 꼭 돌아와요”라는 글귀가 새겨져있었다. 기자가 타고 온 차량 외에도 수십대 승합차가 공원에 도착했다. 주로 나이가 많은 ‘집사님’과 ‘장로님’이 젊은이들 5~6명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청년이나 청소년들은 ‘퀴어의 사전적 의미=변태’, ‘담배와 동성애는 끊어야 합니다’, ‘동성애를 인권으로 포장하니 국민 4천명이 에이즈로 사망’ 등의 손팻말을 들고 행사장으로 가는 길가에 한 줄로 섰다. 나이 든 이들은 동성로 야외무대 광장 바로 앞 ‘접전지’에 섰다.
23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6길에서 기독교 신자가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
‘퀴어반대 대책본부’라는 단체는 행사장 200m 떨어진 곳에서 ‘참교육 캠페인 기도회’를 열겠다며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다. 축제가 시작되면서 두 진영의 경계선은 무너졌다. 행사장에는 그룹 오아시스의 노래 ‘돈 룩 백 인 앵거(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세요)’가 울려펴졌지만 축제를 막는 사람과 축제를 여는 사람들 사이엔 분노의 욕설이 오갔다.
오후 5시30분께 기독교 신자 1000여명은 동성로 야외무대 광장에서 삼덕성당 쪽으로 이어지는 동성로6길에 앉아 길을 막았다. 퀴어축제의 절정인 퀴어 퍼레이드를 막기 위해서였다. 경찰이 해산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한 시간을 기다리던 퀴어축제행렬은 결국 공평네거리에 모여 다른 방향으로 행진을 했다.
동성애 반대 집회에 나선 사람들이 손팻말과 티셔츠를 입고 대구 퀴어문화축제 행사장을 둘러싸고 있다.
대치가 길어지자 젊은이들은 거의 자리를 뜨고 퀴어반대 대책본부 나이든 사람들만이 남아서 길을 막아섰다. 한 60대 여성에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남성과 남성이 교제하면 에이즈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여성과 여성이 교제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 거냐”라고 되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 잘 몰라요.”
지난해 전국 43개 대학 대학생들이 ‘동성혼 개헌반대 대학청년연합’을 구성해 활동에 나섰지만 현장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대부분 동성애 반대 의사는 크지 않다고 했다. 대구에 사는 김아무개(21)씨는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여러 번 말씀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왔을 뿐”이라고 했다. 동성로 근처에 산다는 조 아무개(29)씨는 “흰색 티셔츠를 입었지만 특별히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는다. 어떤 문화인지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집사님 어디 갔었어. 이쪽으로 와.” 버스에서 만났던 한 교인이 퀴어문화 진영에 서 있는 기자를 보고 반색하며 손짓했다. 그러나 무지개 깃발에서 흰색 깃발 진영으로 건너가기엔 ‘사랑은 이성애자만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쌓은 장벽이 너무나 두터웠다.
대구/글·사진 김일우 기자 남은주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