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희 세종시장을 지난달 27일 오전 세종시장실에서 만났다. 선거를 치르면 얼굴이 핼쑥하고 피부가 거칠어지는데, 이 시장은 피곤한 기색은 물론 업무 공백도 없어 보였다. 이 시장은 지난 지방선거 기간 내내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해 ‘경쟁자가 없다’는 평을 받더니 71.3%의 득표율로 재선했다.
“지방정부, 자치분권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 부처는 여전히 중앙의 시각으로 틀을 만들어 지방에 강요합니다. 이런 체제에서 자치분권이 가능할까요?” 선거기간 내내 ‘시민주권특별자치시를 만들겠다’고 외쳤던 이 시장은 자치분권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제가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공약으로 앞세운 이유는 전국의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을 이끌려고 탄생한 행정수도 세종의 시장으로서 구실을 다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낙승했지만 지방분권과 개헌에서는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고 봤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가 조직·사람·예산을 모두 갖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 특성을 살린 정책을 실행하려면 중앙정부와 협의해 법을 바꾸거나 새로 만들어야 가능한데 정부가 반대하면 정책적 의지를 접을 수밖에 없다”고 한숨지었다. 중앙정부는 룰을 일률적으로 전국에 적용하고, 따르지 않으면 예산을 깎거나 아예 삭감해 버리니 실정이 맞지 않아도 안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게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이라고 아쉬워 했다.
박근혜 정부때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했던 복지정책들이 좌절된 일들이 있었다. 이 시장이 지난 임기에 추진했던 공공산후조리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협의 주체인 보건복지부는 국가 정책과 안 맞는다며 반대했다. 결국 공공산후조리원은 추진되지 못했다. “지방 사무는 현장성이 강하죠. 지방자치단체는 인구와 산업 규모 등이 모두 다른데 중앙정부는 지방 사무마저도 똑같은 잣대로 시행할 것을 강요합니다.”
이 시장은 ‘자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낡은 제도로 이·통장제를 들었다. 그는 “이·통장제는 60~70년대 만들어진 제도이다. 그때는 이장·통장이 동네 주민들을 잘 알고, 주민들은 행정업무를 잘 몰라 누군가 대신 처리해 줘야 하는 구조였다”며 “지금은 도시지역 주민 대부분이 공동주택에 살고 행정 절차를 비교적 아는 반면 이·통장과는 서로 모르는데도 제도는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네 일은 동네 주민이 알아서 잘하면 되는 것”이라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지역에 맞는 행정 체계를 갖추도록 지원하고, 지방정부는 지역민이 알아서 동네의 할 일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 자치분권”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지난 임기때 몇 가지 자치 제도를 도입했는데 그중 하나가 공무원이 예산을 지침이나 사전 결정에 따라 사용하지 않고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지난 임기 동안 읍·면·동장에게 재량사업비를 10배쯤 늘려 주었어요.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하더니 지금은 주민과 협의해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을 합니다.” 그는 “비 피해가 있어 긴급 복구가 필요할 때는 물론 주민이 마을회관에 요가 교실을 열고 싶다고 할 때도 현장에서 민관이 협의해 재량사업으로 추진한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도 현장은 지방에 맡겨야 비로소 자치분권을 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외교·안보·조세정책 등 큰일에 집중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지방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까지 다 챙겨야 하는 구조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정착하면 사건·사고는 광역단체장이 챙기면 되니 국가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치경찰제 시범도시로 확정된 데 따른 운영 방안을 물었다. 그는 “광역단체장들은 중요 수사와 형사 업무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자치경찰에 부여하자는 서울시 안을 지지한다. 경찰 업무의 한 10%쯤을 생색내듯 떼어준 제주도식 경찰청 안은 안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경찰청이 지방자치단체를 믿지 못해 업무를 선뜻 넘기지 못하겠지만 시범사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국가 과제다. 자치분권위원회가 경찰청 안과 서울시 안을 잘 절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시 도시 계획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털어 놓았다. 특히 교통은 대전, 청주, 공주 등에서 출퇴근하는 수요 등 도시 계획가들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불거지면서 불편이 커졌다고 밝혔다. 그는 “세종시 건설 계획의 틀을 바꿀 수는 없지만 변수에 대응해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통행량 많은 병목 구간의 도로와 신호 체계를 개선해 효율성을 높이는 시설투자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빠르게 성장하는 젊은 도시입니다. 또 세종시는 국토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의 디딤돌 구실을 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저는 이 도시의 계획과 건설에 참여해온 공동 운명체 이기도 합니다. 세종시장으로서 행정수도 세종을 완성하는데 힘을 다하겠습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사진 세종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