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의 지역화폐인 심청상품권. 곡성군 제공
서울 노원구에 사는 ㄱ씨는 최근 동네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했다. ㄱ씨는 헌혈을 자원봉사 4시간으로 인정받아 ‘지역화폐’를 받았다. 노원구는 지난 2월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노원’(No Won/NW)이라는 지역화폐를 선보였다. 1노원은 1원이다. ㄱ씨는 자원봉사 대가로 받은 2800노원을 구 안의 가맹점에서 사용하고 있다. 가맹점은 주차장, 서점, 카페, 미용실 등 74곳에 달한다. 전자화폐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큐아르(QR)코드를 제시하면 물건값이 결제된다. 회원은 1526명에서 4개월만에 5403명으로 늘었다.
자치단체가 지역경제에 돈이 돌게 하기 위해 지역화폐 발행액을 늘리고 있다. 관광객에게 지역화폐를 돌려주고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등의 묘안을 내놓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전통적인 형태의 지역화폐인 상품권에 이어 전자 지역화폐까지 내놓고 있다. 또 다른 형태의 지역화폐인 공동체 화폐도 새로운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노원구의 지역화폐 노원 회원은 휴대폰에 깔린 앱을 이용해 큐알 코드를 클릭해 가맹점에 제시하면 된다.
지역화폐 노원 가맹점은 회원의 큐알 코드를 스캔한 뒤 전체 결제금액을 입력하고 차감하기를 클릭하면 된다.
■ 지역에 돈이 돌게 하는 자치단체 지역화폐
전남 곡성군에선 지난해 10억원에 그쳤던 지역화폐 판매가 올해 ‘대박’이 터졌다. 올해 상반기에만 ‘심청 상품권’ 판매액은 17억원을 돌파했다. 곡성군은 지난 1월부터 조례를 제정해 기차마을 입장객에게 입장료 5천원 중 인상액 2천원만큼을 심청 상품권으로 돌려줬다. 지난 5월 장미축제를 찾은 관광객 26만명이 5억원어치의 지역화폐를 구매하도록 한 것이 대박의 비결이었다.
자치단체 상품권은 지역 안에서 현금처럼 쓰는 지역화폐의 원조 격이다. 1999년 국내에 처음 지역화폐가 도입된 뒤 전국 기초자치단체 63곳에서 상품권 형태로 지역화폐를 운영하고 있다. 광역정부 중에선 강원도가 지난해 처음 시작했다. 공공기관 포상금이나 도 발주의 공사 대금을 지급할 때 일정 비율을 지역화폐로 받도록 권장하면서 강원도의 상품권 발행액이 올해 830억원까지 늘었다. 전남도도 ‘전남 새천년 상품권’이라는 이름의 지역화폐 발행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는 서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 ‘S코인’을 검토하고 있다. 각종 보조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은 경기도 성남시가 선도적이었다. 경기도 성남시는 2016년 1월 청년배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 시작해 지난해 4차례에 걸쳐 105억477만원을 지급했다. 성남시는 지난해 출산가정당 50만원씩을 주는 성남시 산모건강 지원사업(무상산후조리)에도 지역화폐 32억원을 지급했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6살 미만 어린이를 둔 모든 가정에 아동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역화폐 가맹점에서는 육아용품을 구하기 어렵고 비싸다”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대전 한밭레츠 회원들이 지난 5월 장터를 열어 중고 물품을 교환 구매하고 있다. 한밭레츠 제공
■ 마을공동체 살리는 지역공동체 화폐
대전 한밭레츠는 지역화폐인 ‘두루’를 사용한다. 1999년 10월 첫발을 내디뎌 18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두루는 회원들의 재능과 물품을 나눠 쓰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는 점에서 공동체 화폐 성격이 강하다. 한밭레츠엔 670가구와 업소 30곳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공동체 지역화폐는 서울 마포 지역화폐 ‘모아’, 시흥시 지역화폐, 구미 ‘사랑고리’(타임달러) 등 다양한 형태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김찬옥(47) 한밭레츠 두루지기(운영위원)는 “지역 경제에 돈이 머물고 돌게 한다는 점은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지역화폐와 비슷하지만 회원간에 사용하는 지역화폐는 마을 공동체 복원에 더 관심이 크다”며 “지역화폐 사용이 이웃에게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선행되지 않고 자치단체가 밀어붙이면 실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대하 김기성 박수혁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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