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부산시장이 부산시장 접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영동 기자
3전4기. 부산시장 도전 네 번째 만에 부산시장의 꿈을 이룬 오거돈 부산시장은 취임 첫날인 지난 1일 태풍이 북상하자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항국제터미널에서 열 예정이던 취임식을 취소하고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19일 부산시청 시장 접견실에서 오 시장을 만났다. 그는 “취임하고 20여일 정도 지났는데 1년은 지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2004년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가 14년 만에 부산시청에 입성한 그에게 부산시는 장밋빛이 아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가고 조선산업 위기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집값을 견디지 못한 서민들은 부산을 떠나고 있다. 400만명을 꿈꾸던 인구는 350만명대로 쪼그라들었다.
오 시장의 진단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부산은 교육하기 좋고 아이 키우기 좋고 산업을 발전시킬 좋은 환경도 있다. 천혜의 지정학적 요건도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힘들고 젊은이들은 떠나가고 허울뿐인 제2의 도시로 전락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당선 뒤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가덕도신공항 때문이다. 취임 뒤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가덕도신공항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면서 부산시와 정부가 불편한 관계로 돌아선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오 시장은 “개인적 욕심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가덕도신공항은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라보고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해신공항 결정과정을 의심하고 있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2016년 6월 발표한 공항 입지 타당성조사 용역 결과에 기대어 국토교통부가 김해신공항 건설을 확정 발표한 것은 정치적 논리가 적용됐다고 보고 있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용역에 앞서 했던 여러 차례 용역에서 안전·소음문제 등으로 김해신공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명이 났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김해신공항을 밀어붙이기 위해 안전·소음문제를 일부러 생략했거나 축소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김해공항을 24시간 뜨고 착륙하는 곳으로 만든다면 부산시가 받아들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 시장은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확장성은 없다”고 말했다. 통일이 되면 부산에서 출발해서 러시아와 유럽까지 물류가 오갈 것인데 김해신공항이 당장의 항공수요는 감당할지 모르지만 미래 수요는 감당하지 못한다는 논리다.
오 시장이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낙점되자 시민사회진영과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은 무늬만 진보라고 평가했다. 30년 이상 정통 행정관료를 지낸 흔적이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진보냐 보수냐 하는 경직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용적 사고가 필요하다. 부산시민을 위해서라면 민주당도 한국당도 모두 만날 것이다. 용광로와 같은 시정을 펼치겠다”. 오거돈식 실용노선이다. 이런 철학에 근거해서 그는 “지난 시장 때 추진했던 사안 가운데 옳은 것은 적극적으로 계승할 것이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부산시장 접견실에서 인터뷰하면서 웃고 있다. 김영동 기자
부산 현안문제를 힘있게 추진하기엔 오 시장은 정치적 인맥이 약하다는 일부의 시선이 있다. 2004년과 2006년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출마한 뒤 낙선하자 정당과 거리를 뒀다가 지난 대선을 계기로 뒤늦게 민주당에 입당한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시장은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부산 출신의 우수한 여당 국회의원도 다수고 부산 발전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일하는 야당 의원도 많다. 역대 어느 시장보다 인적 네트워크가 강하다고 본다”고 했다. 오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과 오 시장은 경남고 동문이다. 오 시장은 1967년, 문 대통령은 1971년 졸업했다. 부산민주공원 관련 사업을 추진할 때 오 시장은 부산시 내무국장, 문 대통령은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로 실무 협상을 진행했다. 둘은 또 노무현 참여정부 때 해양수산부장관(2005년 1월~2006년 3월)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다시 만났다. 오 시장은 “합리적 사고를 가진 분”이라고 문 대통령을 기억했다.
그는 부산시장에 당선된 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았다. “노 전 대통령께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부산시장에도 출마했다. 나도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내가 그분이 하려고 했던 것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지역 벽에 막혀 낙마했다. 오 시장은 노 전 대통령 낙마 뒤 23년 만에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과 함께 16개 기초단체 가운데 13곳, 47명의 시의원 가운데 41명을 석권했다. 지난 23년 동안 부산시장·기초단체장·지역구 시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천지개벽이다. 오 시장이 뜻한 대로 시정을 펼칠 수 있는 기회지만 견제할 곳이 없다는 우려도 있다. 오 시장은 “민주당과는 원팀 정신으로 협력하고 소통하겠다. 원팀 정신에는 견제와 균형도 있다. 자유한국당을 반면교사로 삼아 건전한 견제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그동안 많은 개발정책을 만들어 실행했다.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대규모 아파트·호텔이 들어서는 엘시티 사업 허가가 나자 개발을 막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오 시장은 개발 일변도의 정책은 지양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이제는 개발 행정 위주에서 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민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시정으로 방향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방식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이전엔 부산의 문제를 부산이 다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근처 광역단체와 함께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웃인 부산·울산·경남뿐만 아니라 전남과 남해안을 포괄하는 광역권역으로 행정을 넓히고자 한다. 24시간 동남권 관문공항과 부산~목포 고속철도 조성 등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하려고 한다. 영남과 호남이 함께하는 여건이 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오 시장은 취임 뒤 첫 번째 대규모 간부급 인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신구의 조화, 변화와 경험의 균형 있는 인사”를 강조했다.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분야엔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고 경험이 필요한 분야는 베테랑을 기용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모두 사표를 낸 공기업·출자출연기관 25곳의 임원들에 대해선 “낙하산 인사냐 관피아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시민들을 위해 일을 할 수가 있느냐, 정책수행 능력과 전문성이 있느냐, 부산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미래성이 있느냐는 세 가지 기준으로 선별 수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나이가 만 69살인 것을 의식해 벌써 주변에선 오 시장이 4년 뒤 재선 도전에 나설 것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는 “시민이 판단할 문제다”며 여지를 남겼다. 부산/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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