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 장례식장에 고인을 추모하는 펼침막들이 내걸려 있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장례식장을 찾은 문상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9일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빈소가 차려진 부산 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에 낯익은 얼굴들이 속속 찾아왔다.
오전 10시30분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오전 11시30분엔 박상기 법무부장관, 오후 1시 오거돈 부산시장과 부산시 간부들이 조문을 왔다. 오 시장은 방명록에 ‘자유와 인권이 흐르는 세상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오 시장은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말 수고가 많았다”고 말했다. 오후 3시20분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조문했다. 상가엔 문재인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가 보낸 화환이 놓였다.
장례식장엔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78)씨가 이틀째 빈소를 지켰다. 1987년 6월 항쟁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불붙어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폭발했다. 배씨는 “어젯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과 빈소에 도착했다. 오늘 오전 10시 고인의 입관을 보면서 내 죽음도 이와 비슷하겠다고 생각했다. 자식을 억울하게 먼저 보낸 슬픔과 한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나. 고인의 마음을 나는 잘 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 열사가 다녔던 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 동기들도 빈소를 찾아왔다. 이윤정(52)씨는 “종철이가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기 전날 학과 사무실에서 만났다. 종철이가 그렇게 가고 나서 지난 30여년 동안 미안함을 느꼈다. 역사에 무임승차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늘 다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종기씨 빈소에 들러 헌화하고 있다.
박씨의 장례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꾸린 ‘고 박정기 선생 민주시민장 장례위원회’가 진행한다. 31일 새벽 5시30분 발인을 하고 부산 영락공원에서 화장한 뒤 유골함을 들고 남영동 대공분실을 거쳐 박 열사가 영면한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나란히 안치된다.
박 열사의 형 종부(59)씨는 “아버지를 기억해 주시고 같이 슬퍼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아버지는 종철이를 대신해서 많은 일을 하셨지만 아직도 하지 못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셨다. 한마음으로 아버지가 남긴 과제를 이뤄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을 하고 방명록을 적고 있다.
박씨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박 열사의 기념사업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나, 지난해 2월 허리를 다치면서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2월과 4월 박씨를 입원 중이던 요양병원에 찾아오자 “좀 일찍 오지 그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달 전부터 상태가 나빠져 28일 새벽 운명했다. 향년 89.
부산 혜광고를 졸업한 박 열사는 19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했고, 3학년이던 1986년 과 학생회장을 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했다. 1987년 1월 경찰에 잡혀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다가 숨졌다. 그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글·사진/부산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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