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청주시의회 초선 의원 5명이 청주시의회에서 연 소규모 주민숙원사업(재량사업비) 간담회에서 시민단체 등이 재량비 개선 방안 등을 토론하고 있다.박완희 청주시의원 제공
지방의원들이 지방정부에서 받아 마음대로(재량대로) 쓸 수 있는 ‘재량사업비’(재량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국회와 중앙정부의 특별활동비(특활비)가 폐지·축소되는 상황이어서 일부 의원과 공무원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는 지난달 25일 의회 전문위원실을 통해 시 의원 당선자 39명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소규모 주민 숙원 사업 5천만원 이내. 경로당·학교 지원 사업 불가. 2019년 예산 요구는 9월 6일까지 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올 하반기 ‘재량사업비’를 쓸 곳과 액수를 알려달라는 문자였다. 이를 담당하는 하우동 청주시 예산1팀장은 “재량 사업비는 이미 폐지했다. 다만 갑작스런 폐지에 따라 일어날 혼란을 막으려고 주민 숙원사업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완희 청주시 의원은 27일 “재량비는 폐지했다고 하지만, ‘주민 숙원사업비’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살아 있다. 의원에게 일부 예산을 임의로 줄 테니 쓸 곳을 적어 내라는 식이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 등 청주시 의회 초선 의원 5명은 지난 22일 재량비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여는 등 공론화에 나섰다. 그러나 다른 의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청주시가 청주시의회 전문위원실을 통해 의원에게 전달한 주민숙원사업예산(재량사업비) 편성 안내 문자메시지.박완희 의원 제공 (* 누르면 확대됩니다.)
전남도 행정부도 지난달 11대 의회 개원과 함께 의원 58명에게 2억원 범위 안에서 소규모 지역개발 사업의 제출을 요청했다. 전남 역시 의원 재량비를 예산에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전남도 의회의 이보라미, 최현주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의장단을 면담하고 “비리의 온상인 재량사업비를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의장단은 “도 의회 누리집에 집행 내용을 공개하고, 해당 사업을 반드시 공개 입찰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전북도 의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11대 의회 개원과 함께 재량비 부활을 추진하다가 뭇매를 맞았다. 전북도 공무원 노조는 지난 23일 “재량사업비는 법령·조례에 근거가 없으며, 지방 의원의 선심성 예산으로 사용하는데다 수의계약 방식으로 집행돼 비리가 발생했다.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북도 관계자는 “의원들이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하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논리로 재량비 부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 같다. 재량사업비를 부활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북도 의회는 재량비 예산을 편성·집행하는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전·현직 도의원 4명이 구속되자, 재량비를 폐지했다. 전남도 의회 김효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월 재량사업비 공사를 알선해 주고 건설업자한테 194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예산의 쓰임새, 범위, 기간 등을 따로 정하지 않고 편성한 뒤 의원이 사용하게 해 포괄사업비로도 불리는 재량비는 그동안 감사원, 행정안전부 등이 폐지를 권고해왔다. 그러나 몇몇 지방 정부와 의회에서 ‘주민 숙원 사업비’ 등 이름만 바꿔 계속 운영하려 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재량사업비를 주민참여예산으로 완전히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남기헌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충청대 교수)는 “재량비는 지자체와 의회 간 짬짜미의 산물이다. 지자체가 의원에게 눈먼 돈을 안기면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쌈짓돈처럼 쓰고 생색을 낸다. 재량비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는 ‘주민참여예산’으로 전환해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안관옥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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