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기러기 아빠 밑반찬과 속옷 챙기기, 유치원 재롱잔치 대신 참석…’
특정 제약사의 의약품 처방을 조건으로 많게는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챙기고 각종 ‘갑질 횡포’를 부려온 의사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약사법 위반)로 국내 중견 제약사 공동대표 ㄴ(37) 씨와 간부급 직원 등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또 이들한테서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의료법 위반)로 의사 106명과 사무장 11명을 입건하고, 이 중 혐의가 무거운 의사 윤아무개(46) 씨를 구속했다고 덧붙였다.
연 매출 1천억원에 달하는 해당 제약사는 2013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전국의 병·의원 384곳의 의사와 사무장 등을 상대로 의약품 처방을 조건으로 300만원∼2억원까지 모두 42억 8천만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제약사 불법 리베이트 자금 흐름도.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경찰 조사 결과, 제약사는 특별상여금, 본부지원금 등 다양한 예산을 지급한 뒤 실비를 제외한 비용을 회수해 리베이트 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적발된 의사 중에는 의료인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보수교육에 제약사 직원을 대리 참석까지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제약사 영업사원들을 상대로 대리운전하도록 한 의사도 있었으며, 심지어 의사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원 접수는 물론 자녀 유치원 재롱잔치 등에 제약사 영업사원을 대신 보낸 것으로 드러나 도 넘은 ‘갑질’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제약사 일부 영업사원은 실적을 위해 국외에 가족을 보내고 혼자 사는 이른바 ‘기러기 아빠’인 의사의 밑반찬과 속옷까지 챙겨 ‘갑을’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수사 진행과정에서 일부 의사들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갑을’ 관계를 악용해 제약사 영업 직원들을 협박·회유하며 진술 번복 등 허위 진술을 강요한 사실도 밝혀냈다. 구속된 의사 윤씨의 경우 영업사원을 자신의 차에 태워 ‘우리가 한팀이 되면 그렇게 같이 가서 다 문제없이 나올 수도 있다. 내가 이제 선임해서 움직이는 변호사들하고 같이 해서 옆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경찰에서)돈은 전달된 적이 없다고 해야 한다’고 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의사는 경찰 조사를 받는 영업사원에게 ‘지금 되면 (내가)면허 취소되기 때문에 이번 한 번만 해주면 내가 보상은 확실히 해주겠다. (경찰의)강압적인 수사로 진술 잘못했다고 말하면 (나중에) 확실히 밀어주겠다’는 등 진술 번복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영업직원들은 자사 의약품 처방을 조건으로 처방 기간과 금액에 따라 의사들에게 처방액의 10∼20%를 현금으로 제공했고, 신제품이나 경쟁이 치열한 특정 의약품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처방금액 대비 100∼300%까지 리베이트를 건네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리베이트는 의약품 가격을 왜곡해 보험 수가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실제 소비자인 국민에게 리베이트 비용을 전가하는 등 사회적으로 유해한 결과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해당 의사와 제약사에 대해 면허정지와 판매업무 정지 등 행정처분 하도록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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