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열린 고양저유소 화재사건 브리핑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스리랑카 노동자가 띄워 화재 원인이 된 풍등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경만 기자
“힘없는 20대 스리랑카 노동자에 대한 처벌은 부당합니다.”
고양 저유소 화재의 원인으로 밝혀진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되자 구속·처벌하지 말라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10일 오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스리랑카인을 당장 풀어주고 큰 상을 주십시오’,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지 마세요’ 등의 게시물이 20건 이상 올라와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기사 댓글에도 ‘관리 시스템 부재를 외국인 노동자의 잘못으로 몰고가지 마라’, ‘사회적 지위나 국적을 떠나 공정한 수사를 바란다’는 주장이 봇물 터졌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서 한 시민은 “불을 내려는 고의성도 없었고, 풍등으로 불이 날 수도 있다는 예측 가능성도 없었다. 단지 큰 화재가 발생한 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려 한다. 다른 여러 가지 원인들은 제쳐두고 힘 없는 외국인에게 모두 뒤집어씌우고 구속까지 하려는 것은 너무 비열하고 치사하다”고 말했다.
경찰의 수사 결과, 잔디에 풍등이 떨어져 불이 붙은 뒤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 18분 동안 대한송유관공사 직원들이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폐회로텔레비전(CCTV)가 45대나 설치돼 있어 화재가 시작되는 장면이 모두 비춰졌을 것임에도 공사 직원 중 누구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또 저유 탱크 주변에 화재 감지기나 탱크 안에 유증기 회수 장치가 없었다는 점 등도 화재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풍등을 날린 ㅂ씨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며, 안전 관리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밖에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벌 반대 여론이 나온 배경에는 △전날 인근 초등학교 행사에서 썼던 풍등이라는 점 △외국인에 대한 차별일 수 있다는 점 △중실화 혐의를 적용하고 영장을 신청한 것은 무리라는 점 등이 있다.
앞서 경찰은 ㅂ씨를 지난 8일 오후 중실화 혐의로 긴급체포해 9일 오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ㅂ씨가 저유소 존재를 알면서도 풍등을 날렸다며 중실화 혐의를 적용했다. 구속 여부와 별개로 향후 재판에서 중실화 혐의가 인정되면 ㅂ씨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한편, 검찰은 피의자 ㅂ씨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10일 이에 대한 수사 보강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스리랑카 출신의 ㅂ(27)씨는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2015년 5월 비전문 취업(E-9) 비자로 입국해 주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월 300만원 가량을 버는 노동자다. 그는 터널을 뚫기 위한 발파 작업을 하고 나면, 깨진 바위 등을 바깥으로 나르는 일을 했다. 사고 당일에는 고양 저유소 뒤편의 서울~문산 고속도로 강매터널 공사현장에 투입돼 일하고 있었다.
화재가 난 지난 7일엔 오전 중 두 차례 발파 작업이 있었고, 쉬는 시간에 전날 저녁 인근 서정초등학교 행사에서 날아온 풍등을 주워 라이터로 불을 붙인 게 ‘불씨’가 됐다. ㅂ씨가 호기심으로 날린 풍등은 300m를 날아가 저유소 탱크 옆 잔디밭에 떨어졌다. 그런데, 가을철이라 잔디가 마른 상태여서 붙이 붙었고, 불씨가 저유 탱크 환기구로 들어가 폭발과 화재가 났다. 이번 화재의 피해액은 43억원으로 추정된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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