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는 개방 15돌을 맞아 20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가을 국화 축제를 연다. 19일 시민들이 꽃망울 맺힌 국화 동산을 둘러보고 있다. 오윤주 기자
국민이 머무는 청와대가 있다. 대청호 물길을 굽이굽이 따라 꼭꼭 숨겨진 곳에 자리 잡은 청남대다. 푸른 기와집 청와대에 빗대 ‘남쪽의 청와대’란 이름으로 불리던 옛 대통령 별장이다.
개방 15돌을 맞으면서 청남대는 한 사람만을 위한 휴양지에서 그야말로 국민 쉼터가 됐다. 2003년 4월1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개방한 이후 지금까지 1137만4700명이 청남대를 다녀갔다. 하루 평균 2000여명이 꾸준히 방문했다. 올핸 조금 주춤해 지난 18일까지 55만845명이 청남대를 찾았다. 청남대는 개방 15돌을 맞아 20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청남대 가을 국화 축제를 열어 국민과 청남대를 나눌 참이다.
■ 어떻게 이런 곳에 청남대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다. 물은 산이, 산은 물이 막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사방 어느 곳에서도 존재가 노출되지 않는다. 청남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1980년 12월5일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 전 대통령은 대청댐이 내려다보이는 현암정에 올라 대청댐을 둘러 보다가 “저런 곳에 휴양지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건넸고, 당시 장세동 경호실장 등의 지시로 사업이 시작됐다. 1983년 6월 본 공사를 시작해 그해 12월27일 준공했다. 청남대 관계자는 “저도 남해 휴양소가 있었지만 청와대에서 좀 가까운 뭍에 휴양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보고가 있었다. 저도 휴양소 주변에 간첩선이 3차례 출몰하는 등 경호 문제도 나왔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부지 선정 등 작업을 거쳐 청남대가 들어섰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이 점찍은 ‘저런 곳’이 지금의 청남대다. 330필지 184만㎡ 규모에 본관 등 건물만 46동이 들어섰지만 지금도 사방 어느 곳에서도 청남대는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1급 보안 지역이었다. 문의면에서 차를 타고 들길, 산길 등 굽이굽이 20여분을 달려야 청남대가 나온다. 개방 전엔 3단계 보안 문이 있어 허가 없이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청남대 주변 문의면 마을 주민들이 5800개의 돌로 만든 돌탑. 주민들은 청남대를 개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돌탑을 선물했다. 오윤주 기자
■ 대통령 추억 오롯이 청남대 본관 출입구 앞엔 돌탑이 있다. 청남대가 자리 하는 청원군 문의면 32개 마을 이장단과 주민 5800여명이 청남대를 개방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돌 5800개로 쌓은 탑이다. 노 전 대통령은 떠났지만 탑은 그대로 남았다. 노 전 대통령은 개방 전날인 2003년 4월17일 이곳을 찾아 단 하루 묵었다. 다음날 개방식에서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알았다면 개방 안 했을 겁니다”라는 농담을 던지며 기쁘게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줬다. 전날 그가 청남대 산책로 등을 달렸던 자전거도 한동안 전시됐지만 지금은 보관 장소로 옮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3년 1월15일 청남대를 찾았다. 이 전 대통령은 청남대가 조성한 ‘이명박 대통령길’ 개장식에 참석한 뒤 바로 떠났다.
청남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6명이 모두 89차례 찾아 366박 472일을 머물렀다.
군인 출신인 전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과 가족 등은 골프·축구·테니스·스케이팅 등 운동을 좋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조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산책을 즐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른 아침 본관, 골프장 주변 등에 조성된 흙길을 따라 달렸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초가정까지 이른 길을 이희호 여사 등과 호젓하게 산책을 즐겼다.
김찬중(53) 청남대 운영과 업무담당은 “김영삼 대통령은 해바라기, 김대중 대통령은 인동초 등 당신들의 고향 마을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물·화초 등을 많이 그때그때 조성했다. 대통령과 그 가족 모두 조금씩 달랐다”고 말했다. 김 담당은 개방 전 청와대 비서실 소속으로 18년을 일했으며, 지금까지 청남대를 지키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실물 크기 동상을 세운 대통령 광장과 대통령 기록관 등도 조성돼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동상이 설치된 청남대 대통령 광장. 오윤주 기자
■ 박근혜 길 아니라 리더십 길 청남대는 대통령 휴양지였지만 굵직굵직한 역사가 태동하기도 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등 시행에 앞서 전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정책을 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남대 구상’이라는 말의 유래다.
청남대는 이곳을 찾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산책길을 조성했다. 전두환 대통령 길(1.5㎞·30분)은 본관에서 출발해 오각정을 지나 양어장까지 대청호변에 조성됐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수변 산책로가 노태우 대통령 길(2㎞·40분)이다. 산책로도 둘의 임기처럼 이어진다. 김영삼 대통령 길(1㎞·30분)은 김 전 대통령이 조깅을 하던 곳에 조성됐다. 김대중 대통령 길(2.5㎞·60분)은 645계단을 오르고, 출렁다리 고비를 만나는 등 산책이라기보다 등산에 가까울 정도로 험난하다.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역정과 닮았다. 노무현 대통령 길(1㎞·20분)은 두 김 대통령 사이 산속에 조성돼 있어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 좋다. 2013년 1월 개장한 이명박 대통령 길(3.1㎞·90분)은 가장 길다.
청남대는 애초 박근혜 대통령 길을 염두에 두고 산책로를 조성했지만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은 데다 탄핵이 돼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지금은 리더십길로 불린다.
개방 15돌을 맞아 국화 축제가 열리는 청남대. 오윤주 기자
■ 청남대 가을 축제 청남대는 개방 15돌을 맞아 20일 가을 국화 축제를 연다. 청남대 조경팀이 자체 재배한 74종 1만1300여 포기 국화가 전시된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본 따 국화 3000여 송이로 형상화한 한반도 국화, 국화탑, 오리·곰 등 국화 조형물이 눈에 띈다. 들꽃·들풀 등 화초 3만4500포기, 국화 분재 작품 등도 전시된다.
대통령 기록관에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사진전 ‘평화로 가는 길’이 열린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글라스를 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손을 맞잡고 웃는 사진, 지난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악수하는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한 지난 4·27 판문점 선언, 도보다리 산책 장면 등도 만날 수 있다. 난타·국악·성악·군악대 공연과 와인페스티벌 등도 이어진다. 유순관 청남대 관리사업소장은 “청남대는 대청호 주변 빼어난 자연경관과 잘 가꿔진 산책로, 풀꽃 등이 대통령의 추억과 어우러진 곳이다. 호젓하게 가을을 느끼고 싶다면 청남대가 제격”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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