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새벽 경남 거제에서 일어난 이른바 ‘묻지마 살인사건’의 모습이 폐회로텔레비전에 찍혔다. 왼쪽부터 피의자 박씨가 피해자 윤씨에게 발길질을 하는 장면, 윤씨가 꿇어앉아 살려달라고 비는 장면, 박씨가 정신을 잃은 윤씨를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다. 경남경찰청 제공
지난달 4일 새벽 경남 거제에서 일어난 이른바 ‘묻지마 살인사건’과 관련해,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피의자를 감형 없이 강력하게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청원 시작 일주일도 되지 않은 5일 현재 33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달 4일 새벽 2시37분께부터 3시4분께까지 20여분 동안 경남 거제시 고현동 미남선착장 인근 도로에서 박아무개(20)씨가 윤아무개(58·여)씨의 얼굴 등을 손발로 마구 때렸다. 지나가던 주민 권아무개(23)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윤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윤씨는 결국 이날 아침 8시20분께 뇌출혈과 턱뼈 등 다발성 골절로 숨졌다.
윤씨는 혼자 살면서 폐지를 주워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덩치는 키 132㎝, 몸무게 31㎏으로 일반적인 50대 여성보다 훨씬 작았다. 반대로 박씨는 키 180㎝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입대를 앞둔 박씨는 술에 취해 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윤씨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그런데 박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윤씨를 다짜고짜 때렸다. 윤씨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인근 미남선착장의 폐회로텔레비전에 찍힌 영상을 보면, 윤씨는 꿇어앉아 살려달라고 빌기도 했다. 그러나 박씨는 구타를 멈추지 않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윤씨의 다리를 잡고 길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윤씨의 바지가 무릎 아래까지 벗겨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윤씨를 향한 박씨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으로 확인되는 것만 70여 차례에 이른다.
권씨 등 주민 3명이 차를 타고 현장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했다. 권씨 등은 차에서 내려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박씨를 제지했다. 그러나 박씨는 “내가 경찰이다”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결국 권씨 등 목격자들이 박씨를 완력으로 제압한 뒤 새벽 3시4분께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5분여 만에 도착한 경찰은 박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윤씨를 병원으로 후송했다.
하지만 박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술에 취해서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집과는 거리가 먼 그곳에 내가 왜 갔는지도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경남 거제경찰서는 지난달 11일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박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추가 조사를 통해 박씨가 범행 전날 스마트폰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등을 검색한 사실을 밝혀내고, 지난달 29일 박씨의 죄명을 살인으로 바꿔 재판에 넘겼다. 검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숨지지 않았고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런 정도 폭행이면 충분히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 국민 법 감정에 비춰봐도 살인혐의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달 31일 박씨를 엄벌에 처해달라는 국민청원(www1.president.go.kr/petitions/426834)이 시작됐다. 청원인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들. 감형 없이 제대로 강력하게 처벌해주세요. 강력범죄자는 모두 신상정보 공개해주세요.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범죄 처벌 수위를 높여주세요”라고 청와대에 요구했다. 청원 마감일은 오는 30일이지만 청원 참여 인원이 이미 20만명을 넘었기 때문에 정부나 청와대 관계자가 이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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