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부산시장이 21일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8년 한겨레-부산시 국제심포지엄에서 축사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APEC)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협력 증대를 위해 1989년 설립됐다. 해마다 11월이면 아시아와 태평양을 끼고 있는 한국·일본·미국·캐나다 등 21개 국가 정상과 각료들이 상생 발전방안을 협의한다.
아펙 회의는 미국 대통령 등이 참석하는 세계적인 회의이기 때문에 회원국들이 유치경쟁을 벌인다. 아펙 회의를 개최하는 도시는 외국 관광객 유치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 한국은 2005년 아펙 회의를 처음으로 유치하고 20년 만인 2025년 두 번째로 개최한다.
우리 정부는 2005년 아펙 회의가 확정되자 아펙 준비기획단을 만들고 ‘개최도시 선정위원회’를 조직해 개최도시를 공개 모집했다. 서울, 부산, 제주 3개 도시가 유치신청서를 냈다. 부산에선 아펙부산유치범시민추진위원회의 100만명 서명운동 추진단이 134만명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전달했다.
당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지방분권을 강조해 서울이 먼저 탈락하는 분위기였고 부산과 제주의 양자구도에서 제주가 우위에 있었다고 한다. 개최도시 발표를 앞두고 2004년 4월15일 치러진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아펙 회의 유치를 공약으로 내건 제주지역의 열린우리당 후보 3명이 모두 당선된 반면, 부산에서는 지역구 18곳 가운데 1곳에서만 열린우리당 당선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4월26일 선정위 투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1·2차 투표에서 과반이 없어 3차 투표를 했는데 부산이 12표를 얻어 4표에 그친 제주를 꺾었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21일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2018년 한겨레-부산시 국제심포지엄에서 축사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반전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지난 20일 부산시청 집무실에서 당시 아펙 회의 유치를 진두지휘했던 오거돈 부산시장을 만나 들었다. 그는 “당시 내가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했다. 제주로 넘어가는 분위기여서 청와대를 찾아가 수석에게 얘기했더니 (부산 유치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 거면 다음달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포기해라.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당시 부산시 행정부시장이던 오 시장은 안상영 부산시장이 2003년 10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뒤 시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다.
“며칠 뒤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과 마주 보고 앉았습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 부산이 아니냐. 부산이 굉장히 어렵다. 아펙을 부산에 주시고 아펙을 성공시키려면 지하철 조기 완공과 유엔공원묘지 주변 정비사업도 중요하다. 5000억원의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순간 분위기가 썰렁했다고 한다. 오 시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여당 후보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확실히 부산으로 밀어주겠다’며 내 손을 잡았다”고 전했다.
“선정위가 사흘 뒤에 개최도시를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노 대통령이 박봉흠 정책실장을 부르더니 ‘선정을 일주일 연기하라’고 지시하더군요. 저는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어요. 나오면서 ‘내 인생의 진로가 이렇게 바뀌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주일 뒤 선정위가 아펙 회의 개최도시를 부산으로 확정하고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서 관련 예산을 할당했다. 얼마 뒤 그는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이 나돌 만큼 일방적인 분위기였지만, 그는 대통령과의 약속을 지켰다. 결국 그는 허남식 한나라당 후보한테 25%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이듬해 1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부임했다.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다시 한 번 부산시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더 큰 표차로 낙선했다. 이후 한국해양대 총장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뒤 2014년 무소속 후보로 세 번째 부산시장 선거에 나섰으나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에게 졌다. 그는 지난 6·13지방선거에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달고 네 번째 도전해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3전 4기였다.
그는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부산시장에 출마할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아펙 회의를 부산에 유치하면 부산 발전이 10년 앞당겨진다고 생각해 노 대통령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덜컥 출마하겠다고 말해버렸다. 그게 내 인생을 오늘에 이르게 했다”고 웃었다.
<한겨레>와 부산시는 부산 아펙 회의 개최를 기념해 2005년부터 매년 11월 ‘한반도 평화통일과 아시아 공동 번영’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오 시장은 “아펙과의 인연 때문인지, 부산시와 한겨레의 아펙 국제심포지엄의 의미 역시 내게는 남다르다. 함께 잘 키워나가자”고 말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