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학교 학부모들이 일본 아베 정부의 조선 고교 무상교육 대상 제외에 항의하고 있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 많은 조선인들이 전쟁물자 생산을 위해 일본 본토에 강제로 끌려갔다. 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는 조선인도 속출했다. 일본의 조선인들은 자녀들이 우리 말과 글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학교를 지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일본의 ‘조선학교’는 이렇게 탄생했다.
패전 뒤 미 군정을 거쳐 들어선 일본 정부는 1948년 조선학교 폐쇄령을 내린다. 그 뒤로도 대학 입학 자격 제한, 전국 대회 출전 금지 등의 차별적 정책들을 연이어 시행한다.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학교 여학생의 치마저고리를 찢는 등 폭력 사태가 일어나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
2012년 출범한 일본 아베 정부는 더 심한 정책을 폈다.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2010년 도입된 이 제도에 따라 외국인학교를 포함한 일본의 모든 고교생들은 수업료를 면제받거나 1인당 연간 12만엔(118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왔는데, 애초 포함된 조선학교 학생들을 여기서 배제한 것이다.
일본 조선학교 여학생들이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웃고 있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일본 조선학교의 여학생이 한국 아이돌 ‘방탄소년단’ 홍보물을 들고 좋아하고 있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2013년부터는 일본 지방정부들도 조선학교 차별에 가세했다. 조선학교 유치원과 초·중학교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일부 또는 전부 삭감했다. 2014년과 2018년 9월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조선학교 차별 정책에 시정을 권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조선학교와 학생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고교 무상화 배제 통지를 받은 조선학교 10곳 가운데 오사카·아이치·히로시마·도쿄의 조선학교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후쿠오카 조선학교만 내년 3월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 정부의 차별이 이어지면서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했다. 한창 때 일본 전국의 조선학교 160여곳에서 5만여명이 우리 말과 글을 배웠지만, 지금은 조선 대학교를 포함해 60여개 학교에 8천여명만 다닌다. 심지어 현재 조선학교 학생의 60% 정도가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다. 이들의 아버지·할아버지 세대는 90% 이상이 남한 출신이다.
일본 후쿠오카 조선학교인 초등학교. 건물은 도색이 되지 않았고 운동장에 풀이 무성하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큰 어려움에 처한 조선학교를 돕기 위해 부산의 시민들이 손을 내밀었다. 부산민예총,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산시민축구협의회 등 부산 시민단체 24곳은 1일 오후 4시 부산 중구 동광동 부산영화체험박물관 1층 다목적홀에서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발족한다.
시민모임은 조선학교와 국내 학교 학생들의 교류와 상호 방문을 추진하고, 운영비와 교육 기자재 후원, 시설 보수·재건축 지원, 재일조선인 역사기념관 건립,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정책 알리기 등 연대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내년 2월9일엔 일본 기타큐슈 고쿠라시 국제박람회장에서 후쿠오카 지역의 일본인들에게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알리는 문화제도 연다.
이용학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강제징용자들이 배를 탄 곳이 부산항이고, 해방 뒤 조국으로 돌아온 이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도 부산과 경남”이라며 “부산시민들이 연대의 손을 내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