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대사관에 막혀 있던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 전 구간이 연결돼 개방됐다. 7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재숙 문화재청장 등이 개방행사를 한 뒤 덕수궁 안쪽 담장을 따라 새로 조성된 길을 걷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정동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 자리에 대법원과 서울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혼을 하러 법원을 찾는 부부들이 이 길을 지난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고, 돌담길이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 데서 유래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온전히 연결돼 있던 덕수궁 돌담길이 끊어질 위기를 맞은 것은 1883년 4월 영국대사관이 덕수궁에 맞닿은 땅을 사들이면서다. 이후 1959년 영국대사관이 대사관 후문에서 주한민국대사관저로 가는 길목을 철문으로 막고 대사관 땅처럼 쓰기 시작하면서 돌담길 전체 1.1㎞ 가운데 170m가 끊어졌다. 이 길은 과거 고종과 순종이 궁중의 제례를 지내며 궁궐을 한 바퀴 돌 때 지나던 길이었다.
지난 59년 동안 끊어진 덕수궁 돌담길이 7일 전면 개방됐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그동안 단절된 덕수궁 돌담길을 시민 품으로 되돌리고자 2014년부터 영국대사관과 협상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돌담길 1.1km 전체 구간을 전면 개방한다”고 이날 밝혔다. 그동안 막혀있던 170m 가운데 100m 구간은 지난해 8월 먼저 개방했고, 이날 나머지 70m도 추가 개방한 것이다. 이에 따라 덕수궁 대한문부터 시작해 미국대사관저, 영국대사관 후문과 정문, 세종대로까지 이어지는 돌담길 경로가 모두 이어지게 됐다.
7일 오전 시민들이 덕수궁 안쪽 담장을 따라 새로 조성된 길을 걷고 있다. 뒷쪽 흰색 건물이 주한영국대사관이다. 김정효 기자
이날 길이 열린 70m 구간은 지난 4월 문화재 심의를 통과한 이후 12월 초 공사를 완료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시는 영국대사관 정문부터 세종대로까지 기존 돌담길을 새롭게 정비하고, 돌담을 따라 경관조명도 설치했다. 덕수궁 돌담길 주변엔 주한 러시아 공사관, 정동제일교회, 서울성공회성당, 정동극장 등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풍부하다.
서울시는 돌담길 전체를 개방하기 위해 2014년부터 영국대사관에 문을 두드렸다. 2015년에는 주한영국대사관과 ‘덕수궁 돌담길 회복사업 추진’ 양해각서를 맺기도 했다. 영국 쪽은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 등이 발생한 것을 예로 들며 대사관 직원의 안전과 보안 문제를 개방 요건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덕수궁 돌담길 전체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영국 쪽과 협의한 끝에 시 소유 부지인 100m 구간을 지난해 8월 먼저 반환받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남은 구간 70m에 대해 시는 담장 안쪽으로 길을 새로 내고 돌담에 출입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해 영국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재숙 문화재청장, 사이먼 스미스 주한영국대사 등 각계 인사들은 덕수궁 돌담길 개방 기념행사를 열었다. 박원순 시장은 이날 행사에서 “이 곳은 고종과 대한제국 18년의 비운이 서린 곳”이라며 “끊어진 길을 이음으로써 그 비운을 극복해내는 희망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간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 끊어진 길을 이었기 때문에 사귀기 시작한 연인이 와서 걸으면 그 관계가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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