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케이티엑스 사고 현장의 선로전환기(파란 선)가 레일 가운데에 멈춰 있다. 철도 전문가들은 이 선로전환기가 정상 작동했으면 왼쪽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방송(MBC) 뉴스 화면 갈무리
8일 아침 7시35분 발생한 강릉시 운산동 강릉선 케이티엑스 806열차 탈선사고는 선로전환기의 이상 여부를 알려주는 경보장치의 회선을 거꾸로 연결해놓은 데서 시작된 ‘인재’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코레일과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관계기관에 대한 문책론이 나온다.
이날 사고는 선로전환기 경보장치에서 이상 신호를 발견한 강릉역 윤아무개(45) 팀장 등 3명이 현장 점검을 마친 뒤 열차가 사고 구간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고가 난 806열차는 정상 신호에 따라 시속 103㎞로 운행하다 사고 지점에서 기관차와 2호 객차가 왼쪽으로 이탈해 맞은편 철길에 올라선 뒤 멈췄다. 이어진 3~9호 객차와 후미 기관차도 모두 궤도를 이탈했다. 사고 현장의 선로전환기는 서울 방향으로 붙어 있어야 했는데, 레일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해 있었다.
코레일 쪽은 “(조사 결과) 선로전환 경보기의 회선 연결이 잘못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상 신호는 사고 지점에 설치된 남강릉신호장 ‘21-B’에서 발생했어야 하는데, 관제실에는 이보다 위쪽인 ‘21-A’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강릉역 점검팀은 사고와 무관한 지점의 선로와 신호체계만 점검하고 정작 문제가 생긴 곳은 살펴보지 못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선로전환기 표시장치가 잘못 연결된 사실을 알지 못해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부실시공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정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회선이 애초부터 엇갈리게 연결된 채 봉인돼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개통 1년여가 지나도록 강릉선의 유지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으나, 강릉선은 지난해 12월22일 개통했고 선로전환기 점검은 매뉴얼상 1년에 한차례 하게 돼 있어 유지 보수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8일 “기온 급강하로 선로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지만 원인은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가 9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사고 원인은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 중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회선 연결이 잘못돼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가 경보장치 부실시공에서 시작된 인재로 드러나면서 문책론이 비등하고 있다. 최근 코레일은 크고 작은 안전사고와 신호규정 위반, 고속철도 인접 공사 관리 허술, 납품 비리 등 기강 해이 사례가 잇따랐다. 최근 3주 동안에만 열차 관련 안전사고가 10건이나 났다. 지난달 19일 새벽 1시9분께 서울역에 진입하던 케이티엑스 열차가 선로 보수 작업 중이던 포클레인을 들이받았고, 이튿날에는 충북 오송역에서 케이티엑스 열차 전기공급이 중단돼 경부선·호남선 열차 120여대의 운행이 지연됐다. 이어 22일에는 분당선 열차가 1시간 가까이 고장으로 멈춰서는 사고가 있었다. 또 23일에는 원주역에서, 24일에는 광명역과 오송역에서 각각 케이티엑스 열차가 멈췄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전의 코레일 본사를 직접 방문해 철도 안전대책을 강하게 주문한 지난 5일에도 오후 2시 여수발 서울행 케이티엑스 714열차가 충전기 불량으로 운행이 중단됐다. 코레일은 불량 충전기 납품에 관련된 간부 3명을 직위 해제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강릉 사고 현장을 방문해 “우리 국민의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에 대한 신뢰가 더는 물러설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인걸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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