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제주판 살인의 추억, 용의자 구속 유력증거는 ‘실오라기’

등록 2018-12-25 16:29수정 2018-12-25 16:48

2009년 2월 발생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미제사건
지난 5월 영장 청구했다가 기각된 뒤 절치부심
전국 첫 동물 사체 이용한 사망추정시간 조사도
피의자와 피해자 몸에서 나온 ‘실오라기’ 유력증거
양수진 제주경찰청 강력계장.
양수진 제주경찰청 강력계장.
지난 2009년 2월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 ㄱ(당시 27)씨가 귀가하다 실종된 뒤 일주일 만인 같은 달 8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수사본부를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잡지 못한 채 2012년 6월 해체됐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남았다.

이로부터 9년 10개월이 지난 21일 사건 초기부터 유력한 용의자였던 박아무개(49)씨가 구속됐다. 지난 5월 증거 불충분으로 영장이 기각된 뒤 경찰의 영장 재청구 끝에 구속이 이뤄졌다. 양수진 제주경찰청 강력계장은 2016년 12월 부임한 뒤 ‘미제사건 수사팀장’을 맡아 대표적 미제사건인 이 사건 기록을 검토한 뒤 해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양 계장은 “제주사회에서 파장이 컸던 사건이었지만 미제로 남은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당시 피해자 사망 추정시간 혼선이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원인으로 보고 이 부분을 다시 들여다보며 본격 재수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찰청 본청과 제주경찰청의 수사력이 동원되고, 최고의 법의학자로 평가받는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 등이 합류한 가운데 전국 최초로 동물 사체를 이용한 현장실험을 했다. 피해자의 사망추정시간을 재검토하기 위해서다. 이 실험을 통해 ㄱ씨가 숨진 날짜가 그해 2월7~8일이 아닌 2월1일 새벽으로 추정했다. 앞서 사건 당시 부검의는 숨진 ㄱ씨의 사망시간을 발견부터 24시간 이내인 2월7~8일께로 추정했다.

전국 지방청의 프로파일러 25명을 5차례나 투입해 사건을 분석하고, 변호사 출신 법률전문수사관을 동원해 법리검토까지 했다. 2년에 걸쳐 폐회로텔레비전 자료와 섬유증거에 대한 분석 등을 통해 추가 증거들을 확보했다. 경찰의 공조가 용의자 검거 및 수속에 기여한 것이다.

수사팀은 미세섬유 증거 확보 등 기존 증거를 정밀화 해 지난 5월 박씨를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직접 증거로 볼 수 없다며 기각됐다. 경찰은 다시 증거물을 살폈다. 양 계장은 “국립과학수사원의 재감정을 통해 피해자의 가방과 치마에 묻은 피의자의 바지 섬유증거를 추가 확보했고, 피의자의 차량 트렁크 등 3곳에서 피해자의 치마에서 나온 섬유질과 같은 섬유증거를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양 계장은 “섬유증거인 실오라기가 정황증거이기는 하지만 여러 곳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서로 발견된 경우 충분히 범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명력이 있다”고 말했다. ‘유사한’ 섬유증거를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판례도 찾아냈다. 박씨의 차량이 범행 장소 방면으로 이동하고, 가방을 버린 장소 주변을 운행한 정황이 담긴 폐회로텔레비전(CCTV) 자료도 추가로 확인해 공인기관의 감정까지 받는 등 절치부심했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피해자의 물건을 보여주고 피의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긴장적정검사’도 동원했다.

그러나 박씨는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양 계장은 “재판 과정에서 혐의 입증에 자신 있다. 끝까지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숨진 ㄱ씨의 부모는 지난 24일 수사팀을 찾아 감사인사를 전했다. 양 계장은 “피해자 부모가 우리를 찾아와 감사인사를 전하자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고 말했다. 미제사건이 해결된 날, 양 계장은 “아내로부터 ’이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다’라는 말을 듣자 ‘2년 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