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 주택공급 혁신방안 및 세부공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른바 ‘여의도 통개발’ 발언으로 올해 서울 집값 급등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공주택 공급 실험’으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서울 도심 도로 위, 교통섬, 공공시설 등에 공공주택 8만채를 짓겠다는 계획을 지난 26일 내놓은 것이다. 집값 폭등 책임론을 차단하는 한편, 집값 안정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 시장은 지난 7월10일 싱가포르 순방 중 기자들과 만나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할 것”이라고 말해 서울 집값 상승에 불을 지폈다. 강력한 집값 안정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은 정부의 보유세 개편안이 예상과 달리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박 시장의 발언은 부동산 시장에 ‘기폭제’로 작용했다. 여의도, 용산에서 시작된 집값 상승은 서울 전역으로 퍼졌다. 결국 박 시장은 지난 8월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주택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여의도와 용산 개발 계획을 보류한다”고 자신의 발언을 사실상 철회했다. 하지만 그를 향한 비판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집값이 오를 대로 올랐기 때문이다.
북부간선도로 위 공공주택 예상도. 서울시 제공
당시 정부가 집값 상승의 책임이 박 시장에게 쏠리는 것을 방조했다는 관측도 있다. 집값 안정을 위해 내놓는 처방이 먹혀들면 정책 효과가 나타났다고 생색낼 수 있고, 집값이 잡히지 않더라도 ‘희생양’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박 시장의 발언은 정부로선 ‘꽃놀이패’였던 것이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힘겨루기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21일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을 발표하며 서울시내 일부 그린벨트를 해제할 뜻을 드러냈다. 박 시장이 그린벨트 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자, ‘직권 해제’ 카드를 언급해가며 서울시를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포화 상태인 서울의 집값을 잡기 위해선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서울시가 반대해서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인상을 시장에 준 것이다.
박 시장은 그동안 꾸준히 자신을 향한 책임론에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그는 언론 인터뷰와 사석에서 ‘여의도 통개발’ 발언에 대해 “여의도를 막개발 한다는 뜻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개발하겠다는 뜻이었는데, 부동산 시장은 ‘개발’에 방점을 찍어 반응했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박 시장은 측근과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도 수차례 자신에 대한 책임론이 ‘부당하다’고 말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이 지난 26일 북부간선도로 위 등 서울 시내 자투리땅을 최대한 활용해 8만채의 공공주택을 선제로 공급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그동안 수세에 몰린 박 시장이 공세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박 시장은 지난 19일 “서울의 주택공급은 확대됐지만, 자가보유율은 2010년 51.3%에서 지난해 48.3%로 오히려 떨어졌다”며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에 대해 서울시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부동산 투기수익 환수 등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박 시장은 기존에 자신이 약속한 2022년까지 공공주택 24만채를 공급하면서, 추가로 8만채를 더 공급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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