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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김해고분서 일본 유물 발굴…“활발 교류 증명”

등록 2019-01-03 15:23수정 2019-01-03 22:48

경남 ‘김해 원지리 고분군’ 4호분 발굴 조사
일본 고분에서 출토되는 자라 모양 토기 나와
김해 원지리 고분군 4호분에서 발굴된 자라 모양 토기 2점. 김해지역 가야세력과 왜(일본)의 교류를 증명할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김해시 제공
김해 원지리 고분군 4호분에서 발굴된 자라 모양 토기 2점. 김해지역 가야세력과 왜(일본)의 교류를 증명할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김해시 제공
경남 김해의 원지리 가야 고분군에서 자라 모양 토기를 포함한 1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자라 모양 토기는 일본에서 주로 출토되는 유물로, 김해지역 가야세력과 왜(일본)의 교류를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원지리 고분 4호분을 발굴조사하고 있는 가야문물연구원과 김해시는 3일 “원지리 고분군 발굴현장에서 최신 발굴조사 성과를 4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은 4호분에서 자라모양 토기 2점과 목 짧은 항아리(단경호), 굽 달린 토기(고배), 짧은 굽 달린 토기(단각고배), 말안장, 말 탈 때 쓰는 발걸이(등자) 등을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가야고분의 전형적인 유물이지만, 자라 모양 토기는 가야가 아닌 일본 고분에서 주로 발굴되는 유물이어서 연구원은 김해지역 가야세력과 왜(일본)의 활발했던 교류를 증명할 수 있는 유물로 평가하고 있다. 겉면에 새겨진 무늬를 분석하면 증거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연구원은 기대하고 있다.

연구원의 이효석 조사연구1과장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구릉 정상부에 고분 9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주변을 소형 무덤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4호분은 6세기 전반 금관가야 쇠퇴기에 조성된 당시 수장급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주곽인 5호분까지 발굴하면 그 정체를 더욱 명확히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호분은 길이 3m, 폭 1m가량의 비교적 작은 무덤인데, 다행히 도굴되지 않아 100여점의 유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김해지역 가야고분은 주곽에 주검을 안치하고 부곽에 부장품을 안장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가야문물연구원은 4호분이 부곽이고 인접한 5호분이 주곽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야유적인 김해 원지리 고분군. 구릉 정상부에 9기의 고분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주변을 소형 무덤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확인됐다. 김해시 제공
가야유적인 김해 원지리 고분군. 구릉 정상부에 9기의 고분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주변을 소형 무덤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확인됐다. 김해시 제공
앞서 2017년 김해시는 경상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원지리 고분군 3호분을 발굴했다. 발굴 결과, 원지리 고분군 3호분의 봉분은 지름 20m, 높이 3m로 지금까지 김해지역에서 확인된 무덤 중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났다. 봉분 안에 설치된 석실은 한쪽 벽면에 출입시설이 마련된 구조(횡구식 석실)였으며, 규모는 길이 7.3m, 폭 1.45m, 높이 1.57m로, 좁고 긴 형태였다. 하지만 이미 도굴당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김해시는 추가도굴을 막기 위해 가야문물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9월부터 4호분을 발굴하고 있다. 경남도는 지난해 5월3일 김해 원지리 고분군을 경남도기념물 제290호로 지정했다.

김해 원지리 고분군 3호분의 석실 내부 모습. 이 무덤의 봉분은 지름 20m, 높이 3m로 지금까지 김해지역에서 확인된 무덤 중 가장 크다. 김해시 제공
김해 원지리 고분군 3호분의 석실 내부 모습. 이 무덤의 봉분은 지름 20m, 높이 3m로 지금까지 김해지역에서 확인된 무덤 중 가장 크다. 김해시 제공
금관가야는 기원 전후 수로왕이 지금의 김해지역에 세운 나라이다. 낙동강 수로와 남해 뱃길을 이용해 발전하면서 초기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했고, 바다 건너 왜(일본)와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하지만 서기 400년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군사 5만명을 보내 낙동강 하류 지역의 가야와 왜 세력을 공략했고, 이를 계기로 금관가야는 급속히 쇠퇴했다. 결국 제10대 구해왕이 신라에 항복하면서 532년 금관가야는 멸망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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