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수호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이 열린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천 관수교 앞에 모인 청계천 공구상가 상인들 머리 위로 을지유람 안내판이 붙어있다. 을지유람은 서울시 중구가 해설가와 함께 골목길을 걸어다니며 여행하는 동네투어 프로그램이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공구상과 오래된 상점들이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이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을지로 일대 재개발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서울시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미 법적 절차에 따라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인 재개발 사업에 대해 시가 직권 해제 등으로 재개발 사업을 되돌릴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재개발 사업 등 정비사업의 추진 상황을 살펴 정비구역 지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면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재개발 사업을 직권으로 해제할 수 있다. 현재 논란이 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세운 3-1구역과 3-4·5구역은 지난해 사업시행인가를 거쳐 관리처분인가가 나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이다.
재개발 사업 인가가 난 구역에 대해 서울시가 직권으로 해제한 대표적인 사례는 종로구 옥인동 일대 옥인1구역이다. 이 구역은 2007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뒤 2009년 11월 사업시행인가가 났으나, 2011년 6월 관리처분인가 신청이 반려됐다. 관리처분인가가 나면 철거가 진행되는데, 이 일대 한옥 밀집 지역을 두고 개발과 보존 논리가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옥인1구역은 장기간 사업 추진이 지연되다 2017년 3월 서울시가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이 구역 정비사업 지정을 직권으로 해제했다.
하지만 옥인동 사례는 예외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국가균형발전위원)는 “옥인동은 한옥 등 역사 문화적 가치에 대한 보존 여론이 강했기 때문에 직권 해제가 가능하다”며 “을지로는 70년대 산업 클러스터 활동이 활발했던 곳을 지금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도시 경쟁력이 있는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상황이라 서울시가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재개발 사업 인가가 난 구역을 지금 와서 직권 해제 했을 때 벌어질 소송에서 시가 이길 수 있는지 의문이고, 지방정부의 정책이 뒤집히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용도 크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이르면 이번 주 관련 대책을 내놓을 전망이다. 조남준 서울시 역사도심재생과장은 “당장 사안을 진정시킬 방법과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나눠서 고민하고 있다. 사업계획조정 등을 통해 가능한 한 오래 끌지 않고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도 전면 보존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구역 내 상점과 상인을 모두 남기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공구상 모든 분들이 도심에 다 있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사업시행인가가 나지 않은 구역까지 전체적으로 실태조사를 해 세운상가와 협력 가능한 상점 등을 중심으로 보존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들과 시민사회단체는 23일 ‘백년가게특별법제정을 위한 소상공인 증언대회’를 여는 등 의견을 모으고 있다. 김상윤 백년가게수호국민운동본부 기획실장은 “관리처분인가가 난 구역은 사업시행계획안을 수정해 도시재생에 적합한 형태로 건물을 올리고, 아직 사업시행인가가 나지 않은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 지구는 시가 인가를 내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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