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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이장은 마을 만들기 리더…교육 통해 전문성 키워야”

등록 2019-01-24 19:18수정 2019-01-24 20:20

[짬] 옥천 동이면 이장협의회 김기복·박효서씨

전국에서 처음으로 좋은 이장 지침서 <동이마을 이장 업무 매뉴얼>을 만든 김기복(왼쪽) 동이면 이장협의회장과 박효서(오른쪽) 전 동이면 이장협의회장.    오윤주 기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좋은 이장 지침서 <동이마을 이장 업무 매뉴얼>을 만든 김기복(왼쪽) 동이면 이장협의회장과 박효서(오른쪽) 전 동이면 이장협의회장. 오윤주 기자

‘마을 어르신’, ‘심부름꾼’, ‘관변 인사’, ‘준공무원’, ‘행정 보조 요원’….

농어촌 마을의 각기 다른 이장의 위상이다. 하지만 마을을 대표하는 일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도시민들은 이장과 같은 일을 하는 통장을 잘 모르지만 시골에선 이장이 마을의 얼굴이다. 이장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할까? 어떻게 하면 이장을 잘할 수 있을까? 충북 옥천군 동이면 이장협의회(회장 김기복·58)가 최근 발행한 <동이마을 이장 업무 매뉴얼>에서 답을 내놨다. 책은 전국에서 처음 나온 좋은 이장 지침서다. 다달이 처리해야 할 공문, 마을 사업, 지침, 알림 등이 126쪽에 빼곡하다. 마을 관련 조례, 이장 복무규정, 군·마을 현황, 연락처 등도 꼼꼼하게 적혀 있다.

동이마을 이장업무 매뉴얼 표지.
동이마을 이장업무 매뉴얼 표지.

23일 오후 동이면에서 만난 김 회장은 “6년째 이장하고 있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이장들과 상의 끝에 공부해서 남(이웃) 주려고 책을 만들었다. 이장뿐 아니라 주민이 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금강수계 기금 주민지원사업비 일부로 50여 권을 발행해 동이면 이장·면사무소 등과 나눴다. 김 회장은 “여기저기 달라는 곳이 많아 고민이다. 함께 만든 이들과 저작권 등록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을 폈다. 이장이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차상위 계층 정부 양곡 신청, 못자리 상토 지원, 농업인 자녀 학자금 신청, 암소 수정란 이식 수요 조사, 자동차세 연납 홍보, 노인 의치 보철 지원에 이르기까지 1월에 처리해야 할 업무만 70여 가지다. 이렇게 12월까지 매달 처리해야 할 이장 업무를 담았다. 각종 사업 신청 요령과 마을 재산·비품 대장 관리, 마을 회의록 작성법도 있다.

“이장 안 해본 사람들은 이장이 그냥 놀고먹는 자리라고 하지만 실제론 달라요. 농사·행정·교육·문화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일들을 처리해요. 많이, 제대로 알아야 해요.” 2011~2017년까지 옥천 안터마을 이장을 지낸 박효서(53) 전 동이면 이장협의회장이 거들었다. 김 회장과 박 전 회장은 앞서 지난 201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좋은 이장학교’를 설립했고, 이장 매뉴얼도 함께 만들었다.

“이장이 잘해야 마을이 산다. 마을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둘은 이 이유로 의기투합했다. 이장학교는 애초 동이면 이장 22명을 염두에 두고 설립했지만, 예비 이장은 물론 주민·군의원·공무원 등 70~80명이 수업을 받았다. 수업 내용과 강사진이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개강 첫해 경남 남해 이어리 이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강단에 세웠다. 2017년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의 마을 만들기를 소개했고, 이시종 충북지사는 이장과 자치행정을 강의했다. 지난해는 제주대 법대 신용인 교수,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 등의 특강이 이어졌다. 이장의 역할은 물론 마을 만들기, 사회적 경제, 현장 이야기 등 알찬 내용이 이어지자 이웃 동네 이장도 청강할 정도다. 동이면 이웃인 군북면에서도 지난해 이장학교를 열었다. 올해 4기 이장학교는 6~7월께 개강할 참이다. 실제 이장학교 수료 이장들이 마을을 이끌고 있는 동이면 안터마을(석탄리)은 마을 반딧불이 축제가 전국 축제로 발돋움하고, 10년 전 100명 남짓하던 인구도 200여 명으로 느는 등 ‘좋은 이장 효과’를 내고 있다.

박정옥 동이면장은 “이장학교를 이어오면서 마을이 달라졌다. 행정 이해도와 참여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제 이장은 단순한 행정 전달자가 아니라 마을을 성장시키는 디자이너”라고 평가했다.

최근 전국 최초 ‘이장매뉴얼’ 내
126쪽에 업무 내용·요령 등 담아
3년 전엔 전국 최초 이장학교도
70여명 수료… 6월엔 4기 개강

“정부가 이장 교육 적극 나서야
이장학교 확대차 연수원 만들 터”

이들은 왜 이장 교육과 전문화에 눈을 돌렸을까? 재작년 기준 정부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이장은 3만6983명, 통장은 5만7337명이다. 이들은 다달이 수당 20만원, 설·추석 명절 상여금 100%, 고교생 자녀 학자금 등을 받는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이지만 교육은 전무한 실정이다. 김 회장은 “수당은 시쳇말로 기름값도 안 된다. 그야말로 마을 심부름꾼으로 봉사하지만 현실화가 시급하다. 한두 차례 지자체에서 이장 워크숍을 하지만 특강 두어 시간 하고 나머진 친목 도모다. 변변한 교육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장 관련 법적 근거도 자치단체가 정한 복무규정·규칙·조례 등이 고작이다. 2016년 이명수 의원 등이 이·통장의 임기와 수당·보상금 현실화, 이·통장 연합회 설립 근거 등을 담은 ‘이통장 운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법안 심사 소위에서 잠자고 있다.

충북 옥천 동이면 주민과 전·현직 이장 등이 지난해 3기 이장학교 수업을 듣고 있다. 동이면 이장협의회 제공
충북 옥천 동이면 주민과 전·현직 이장 등이 지난해 3기 이장학교 수업을 듣고 있다. 동이면 이장협의회 제공

이들의 다음 목표는 이장학교 전국 확대를 위한 이·통장 연수원 설립이다. 박 전 회장은 “이장학교를 통해 공부하면 할수록 교육의 필요성이 크게 와 닿는다. 이·통장은 주민과 호흡하는 행정의 보조요원이자 좋은 마을 만들기의 리더다. 행정안전부와 자치단체 등 중앙·지방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체계적·전문적 교육을 해야 한다. 연수원이 필요하다. 좋은 이장이 나라의 힘이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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