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70년 전의 기억, 손으로 그리다

등록 2019-02-15 15:28수정 2019-02-17 11:48

4·3평화재단·70주년기념위, ‘생존희생자 그림 기록전’
16일부터 4월14일까지 4·3기념관 전시실에서 전시
생존자 18명이 자신들의 경험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
양성보씨가 4·3 당시 기억을 떠올려 그린 그림이다. 양씨는 총소리에 도망가다 총을 맞았고, 나중에 경찰에 연행됐다.
양성보씨가 4·3 당시 기억을 떠올려 그린 그림이다. 양씨는 총소리에 도망가다 총을 맞았고, 나중에 경찰에 연행됐다.
“총소리에 뒤도 안 보고 도망가는 도중 경찰 수명이 일제 사격으로 주위에 있던 밭 담에 총알이 맞아 그 파편이 무수히 견갑골 주위에 맞았으나 나는 관통된 줄도 모르고 계속 도주하는 모습. 부상과 동시에 계속 뛰다가 숨차서 쉬던 중 2명의 경관에 의해 강제 연행하는 모습(내가 도망칠까 봐 경관이 나의 양발을 구둣발로 짓이기고 있다)” 양성보(91·제주시 노형동)씨가 그린 그림 설명이다.

강종화씨가 4·3 당시 주민들이 학살되는 모습을 상세하게 그렸다.
강종화씨가 4·3 당시 주민들이 학살되는 모습을 상세하게 그렸다.
“재료는 소나무를 베어다 통나무집을 일렬자로 길게 만들고, 8평 정도 되는 공간을 2평씩 나눠 1칸에 1세대씩 배정해 살면서 부락 전체에 성을 쌓았다. 1948년 10월 소개 갔다가 1949년 5월경에 입주했는데 생활방식은 소개 당시 갖고 간 식량과 옷으로 생계하고 모자란 부분은 들에 풀도 캐어 먹고, 전분가루, 바다 풀을 먹었다.” 강종화(89·제주시 애월읍)씨의 그림에는 이런 설명이 들어있다. 4·3 당시 군·경 토벌대의 소개령으로 집이 불타고, 집단 거주하던 당시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4·3평화재단이 16일부터 오는 4월14일까지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전시실에서 여는 4·3 생존희생자 그림 기록전 ‘어쩌면 잊혀졌을 풍경’에 내걸린 설명이다. 일부 단어의 맞춤법이 맞지 않거나 문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지만, 생존희생자들이 그린 그림에는 70여년 전의 기억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주관으로 진행한 생존희생자 그림 채록 사업의 결과물이다. 전시된 그림에는 서툰 솜씨지만 직접 자신의 기억을 그림으로 담고, 설명을 달기도 했다. 전시장에서는 생존희생자 18명의 원화 그림, 자화상 사진, 인터뷰 영상, 아카이브 등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특히 치유 과정으로 4·3 경험자들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직접 그린 그림들을 통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제주4·3을 알 수 있다. 작은 개인의 삶에서 4·3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 흐름이 특기할만 하다.

개막식은 17일 오후 3시에 열리며 전시에 참여한 생존희생자 18명과 유가족들도 참석한다. 또 제주말로 노래하는 뚜럼브라더스 박순동씨와 첼리스트 문지윤씨가 위로공연을 펼칠 예정이어서 전시의 의미를 더한다.

양동규 전 제주민예총 사무처장은 “지난해부터 작가들이 같이 작업에 참여해 6차례씩 만나 인터뷰한 경우도 있다. 작가들과 4·3경험자들이 같이 작업하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 서로 공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이 계속되면 4·3의 훌륭한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그림전에 참가한 강순덕(80·제주시 애월읍)씨는 “지금이라도 멀쩡한 손과 다리로 살아갈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8살 때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난다. 이제는 집에서 그림 그릴 때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강씨는 4·3 당시 산에서 피신생활을 하다 계곡에서 떨어져 왼팔을 쓰지 못하게 됐다.

강순덕씨가 “그림을 그릴 때가 제일 좋다”며 밝은 표정의 자신을 그렸다.
강순덕씨가 “그림을 그릴 때가 제일 좋다”며 밝은 표정의 자신을 그렸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이번 전시는 생존희생자들이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생존희생자들의 아픔을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림채록 작가는 고경화, 고혁진, 김영화, 박소연, 박진희, 신현아, 오현림, 양동규, 홍보람 작가 등 9명이 참여했다. 그림전에 참가한 4·3 생존희생자는 오인권, 홍기성, 고영순, 양창옥, 윤옥화, 강순덕, 김행양, 김기윤, 오태순, 부순여, 송갑수, 양성보, 양능용, 강종화, 안흥조, 박춘실, 장영윤, 김영자씨 등 18명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사진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