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행촌동 ‘딜쿠샤’ 외부전경 사진 서울시
서울 서대문구와 종로구를 잇는 사직터널 위 언덕에 고풍스런 외관의 붉은색 2층 벽돌집이 있다. 1923년 지어진 이 집에 주인은 ‘딜쿠샤’(Dil Kusha)라는 이름을 붙였다. 힌두어로 ‘이상향’, ‘희망의 궁전’이란 뜻이다. 집 주인은 1942년 일제에 의해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20년을 이 집에서 살았다. 그의 이름은 앨버트 테일러(1875~1948). 한국에 거주할 당시 미국 에이피(AP) 통신 조선 특파원으로 3·1운동과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외국에 처음으로 알렸다.
이 집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영국과 미국의 주택양식이 절충된 형태로 일제 강점기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테일러가 살던 시기 딜쿠샤에는 한국에서 수집한 예술품을 진열하는 공간이 있었고 2층 응접실에선 멀리 남산과 한강이 보였다고 한다. 테일러가 떠난 뒤 이 집에는 갈 곳 없는 가난한 주민들이 들어와 살았다. 안팎의 원형도 많이 훼손됐다. 이 집에 얽힌 사연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서울시가 지난해 이곳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11월부터 원형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 독립을 도운 외국인들의 행적을 기리는 전시관을 만들어 2020년 개관하는 것이 목표다.
1926년 화재 이전 딜쿠샤 전경 사진 사진 서울시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다음달 1일 서울시가 딜쿠샤 복원 현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한다고 19일 밝혔다. 이 행사는 덕수궁·정동·경교장 등 서울 도심의 독립운동 유적답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데, 초·중·고생 자녀가 있는 가족단위 참가자 4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앞서 2016년 서울시는 딜쿠샤 복원 및 보존을 위해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종로구와 딜쿠샤의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합의서를 마련하고 업무협약을 맺었다. 같은해 12월 서울역사박물관은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엘(L) 테일러로부터 딜쿠샤 관련 자료 451점을 기증받기도 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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